이런저런 이야기

비행기 추락 사고에 유가족 지원 팀으로 참가

Young1Kim 2007. 8. 12. 06:18

작성: 2006.9. 수정: 2021. 10.

지난 주일 아침 뉴스에서 캄에어 (Comair) 항공사의 사고 보도를 보고 있는 중 전화벨이 울렸었다. 본사 모처로 곧 출동하라는 것이었다. 급히 여행가방을 꾸려 지정된 곳에 도착하니 이미 특별기에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은지 두시간만에 아틀란타를 이륙했고 정오가 되기 전에 렉싱턴 (켄터기주) 현장에 도착했다.

 

캄에어는 델타 항공의 자회사이다. 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 승객의 가족을 돕는 델타 항공의 요원으로 자원하고 훈련 받은 바가 있다. 델타의 가족돕기 팀은 규모가 잘 짜여있는 것으로 항공업계에 알려져있다. 현지에 팀이 파견되어 유가족과 연락을 하고 유가족이 현지에 오기를 원하면 교통편과 숙박시설 예약을 아틀란타의 본사 지원 본부에 부탁해 서로 효과적으로 협력해 가족을 돕는다.

 

이런 조직이 구성된 지난 십여년간 다행히 델타 항공의 사고는 한건도 없었으나 8년전 제휴사인 스위스 항공의 사고가 카나다에서 발생했을 때 먼거리에 있는 스위스 항공 사람들을 대신해 유가족들을 도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자회사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비보를 듣고 유가족이 몰려오는 캠벨 하우스 호텔에 본부를 설치하고 한가족 씩을 배당받았다. 나도 한 가족을 배당받아 졸지에 미망인이 된 여성에게 전화를 했다. 델타 항공사의 가족돕기 요원 아무개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항공편이나 지상교통편, 호텔 예약등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주선해 해결해 드리겠다고 내 역할을 설명했다. 비극을 당한 가족과의 첫 전화는 그리 쉽지 않았다. 미망인은 여러번 대화를 중단하고 흐느꼈다.

 

전화 외의 가족과의 접촉은 주로 교통안전국 (NTSB)의 브리핑을 전후해서 이루어졌다. 50명 피해자의 가족들과 같은 방에서 브리핑을 듣는 것 역시 힘든 일이었다. 한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할 때 한가족의 오열을 지켜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 50배의 오열을 지켜보며 감정에 극복되지 않으려면 초인간적 힘이 필요했다.

 

탑승자들이 어느 시점에서 사망했습니까? 저의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비행기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시신들이 기체 내에 있습니까 밖에 흩어졌습니까? 첫 브리핑의 질문들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졸지에 잃은 유가족의 입장에서 회사와 당국을 비난하고 욕을하고 고함을 질러도 다 이해를 할 판인데 감정이 격해 언성이 다소 높아지는 것도 한두사람에 불과하고 대개는 사실을 더 잘 알려고 조용히 이성적 질문을 한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이 나는 것이 더욱 분위기를 숙연히 할 뿐이었다.

 

두번째 날의 브리핑에는 카운티 검시관의 보고가 있었다. 자기 직원의 누이가 탑승객이어서 자기도 이 사고에 개인적으로 연관 되었음을 설명했다. 자신도 장의인인 입장에서 장례시 관을 열지 못할 것으로 안다고하자 흐느끼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시신의 훼손이 심하다는 의미였다.

 

일주일간 거의 잠을 못잔 상태에서 가족의 시중을 들다가 돌아왔다. 일을 시작할때 그때에는 흔치 않았던 휴대전화를 배당 받아 유가족과 통화를 했고 일이 끝났을 때는 전화를 다음 팀에게 인계하고 떠났다. 유가족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났고 개인적 인연을 계속할 수 없었다.

 

가족 돕기 요원을 출동시키는 회사의 목적은 어려움에 처한 유가족에게 교통편과 숙식등의 편의를 베풀자는 것이지 친절을 베풀어 피해소송을 면해보려거나하는 것이 아니다. 나로 인해 애통하는 가족들의 마음에 다소간 위안이 되었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사고로 출동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