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이야기

2006.12. 말썽

Young1Kim 2007. 8. 12. 06:27
 
예전에 열심으로 같이 교회를 섬기던 이들을 오래간만에 만나 이야기해보면 이제는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는 이가 의외로 많다. 교회를 나가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이 교회에 말썽이 많다는 것이다. 말썽 많은 교회를 피해 다른 교회를 나가보면 거기도 말썽이 많아 그렇게 몇 군데를 다니며 마음의 상처만 커지고는 그냥 교회를 등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썽은 대개 다수가 소수를 억누르는데서 생긴다. 목사가 내놓은 어떤 안건을 교인 대다수가 찬성해 통과 시키면 목사는 자기의 지도력에 흡족한 마음을 갖고 중요한 과정이 끝난 것으로 생각케 된다 .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반대하던 소수를 억눌렀다면 그 소수에 의해 말썽이 생긴다. 우리 주위에서 안건을 반대하는 한두사람을 여러사람이 욱박지르는 광경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그들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회의장에서 물러나와서는 그 억울한 감정을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호소한다 . 말썽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를 위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소수를 보호하기 위해 있다. 소수의 권리가 적절히 보호되면 그 소수에 의해 말썽이 생기지 않는다 . 나는 이민 교회가 민주주의적 제도를 실천한다면 대부분의 말썽이 없어질 것으로 믿는다. 민주주의적 제도는 지도자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상식과 의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민주주의적 제도는 모든 단체에서 다 지켜야 할 것이지만 특히 교회에서 지켜야 한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어서 그런 인위적 제도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 하기 쉬우나 성도들도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어서 교회나 다른 교인들의 이익 보다는 자신의 이기적 목적를 추구하므로 그런 소지를 제도적으로 방지해야한다 .

민주주의적 제도의 실천은 다음의 회의예법으로 시작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다.

o  의장은 안건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교대로 발언권을 준다

. 백명이 찬성 발언을 하기를 원하고 세명이 반대 발언을 원하면 양편에게 세사람씩만 발언을 허락 한다 .

o  발언은 3분이내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회중이 원하면 조정할 수 있다 .

o  각자 두번 발언할 수 있으나 한번 발언 후 원하는 이들이 모두 한번씩 발언한 후에만 두번째 발언을 할 수 있다.

o  발언은 제안된 안건에 대하여만 할 수 있다.

o  발언자는 다른 이를 비난할 수 없다.

o  모든 발언은 의장을 향하여 해야 한다.

o  위원의 이름을 말할 수 없다.

o  관계 없는 다른 안건을 비난할 수 없다.

o  자신이 동의하거나 재창한 안건을 반대할 수 없다.

o  보고서나 글의 낭독은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

o  발언권을 얻은이의 발언이 끝날 때 까지 앉어 기다려야 한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는 미국인 교회나 한국에 있는 교회에 비해 말썽이 많다. 그것은 제 땅에서 제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 이민 생활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우리에게는 쉽게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 예를 들면 배우자가 좋지 않은 과거가 있을 경우 그것이 부부관계과 원만할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부부싸움을 하며 감정이 격해지면 그 과거가 들춰지는 것과 같다. 이미 신경이 곤두서 있는 사람들을 불공평하게 억누르고 말썽이 없기를 바라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어려운 이민 생활에서 교회가 따뜻한 마음의 쉼터가 되어야지 말썽의 도가니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정의를 실천하고 교인과 사회에 가르쳐야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영적 성장을 위해 자기들에게 맡겨진 교인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억누르는 불의을 베풀어 목자를 불신하는 양떼가 되어 험한 세상을 방황하게 한 책임을 후일에 어떻게 감당 하려는가 . 민주주의적 제도의 실천으로 교회 안에서의 말썽이 적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