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된 2차대전 일본작품 어떻게 대응해야하나?
일본작가의 청소년 대상 소설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를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독서 교재로 쓰고있다. 한국에서 살고있던 일본인 소녀가 해방후 식구와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쓴 것인데 한국인을 복수심에 가득찬 험한 폭도로, 그리고 일본인을 순진하고 나약한 피해자로 묘사한 것에 한국인 학생들과 부형들이 반발해 교재로 쓰지 말아 줄것을 서명운동을 벌여 탄원한 적이 있었다. 결과로 한국 학생들이 많은 일부 학군에서는 교재로의 사용을 중단하기도 했다. 내용을 직접 보지않고 남의 작품을 비평할수 있나 싶어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처음 몇장만 보고는 역시 메스꺼워 돌려줬다.

얼마전 The Burmese Harp (1956) 라는 일본영화를 TV에서 봤다. 2차대전 말기의 일본군 한 소대가 버마에서 영국군의 포로가 되는 와중에 소대장의 명령으로 뒤쳐진 한 병사가 겪는 심리적 갈등을 그린것이다. 실제로는 피정복국 민족에게 말할수없이 잔혹했던 일본군을 음악을 사랑하는 순진한 청년들로 묘사하는 것에 메스꺼움을 느꼈으나 참고 보던중 마음속에 감동을 받고 얼마전에는 인터넷 영화 대여점 netflix의 두주간의 무료이용 프로그램을 통해 이영화를 빌려다가 녹화를 해 어머니께도 보여드렸다. 확실히 잘된 영화이고 그중에서도 인상깊은 몇 장면과 음악이 아직도 뇌리에서 맴돈다.
일본의 피해자였던 우리들에게는 역시 맘편치 않으나 위의 책과 영화는 계속해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대전중의 일본인을 순진한 이성적 민족으로, 그들에게 무자비하게 탄압 당한 우리를 미개하고 비이성적 민족으로 이해시킬 것이다. 서명운동으로 교재로의 사용을 중단을 요구한다고 재고할 학교는 결국 몇 되지 않을 것이다. 피정복국민인 나를 감동시킨 영화가 편견이 없는 다른 민족들을 감동시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2차대전이 끝난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80, 90대의 노인들을 세계각국에서 색출해 나치 전범으로 감옥에 쳐넣는 유태인들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너무 쉽게 일본 전범들을 놓아줬다. 전범 색출은 커녕 일본군 위안부들을 위한 보상금마저 아직 받지 못한 형편이니 어처구니가 없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미화한 작품이 전혀 없는 반면 전쟁의 현실을 왜곡한 일본 작품은 세계무대에서 판을 친다. 이런 불의로운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나?
유태인 생존자들은 수많은 명작을 써냈다. Kertesz라는 유태계 항가리인은 아우슈비츠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2002). Frankl의 Man's Search for Meaning은 심리치료계의 명저이다. 일제의 기억이 아주 사라지기 전에 우리중에서도 그런 명저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여성들은 일본군 위안부를 대상으로한 노벨상 수상작을 하나 써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정치적 힘이없어 일본인 전범은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나 The Burmese Harp 를 능가하는 작품이 우리중에서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