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연습
크리스마스 부터 시작된 두주반 휴가가 오늘로 끝이다. 나는 일년내 휴가를 미루다가 연말에 몰아 쓰는 습관이 있다. 미리 휴가를 썼다가 나중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미루는가보다. 그래도 지난번엔 10월과 11월에 쓰고 며칠 남은걸 연초에 마저 썼는데 금년에는 10월에 정부 shutdown이 있어 휴가가 취소됐었고 11월엔 한국에서 친구가 온다고해 휴가를 쓰지않고 기다리다가 친구가 돌연 오지 않게돼 공중에 떴다가 연말연초에 놀아야하게됐다.
긴 휴가중 이런저런 일도 하고 여행도 하려고 생각했으나 별로 이렇다할 활동이 없이 휴가가 다 지나갔다. 집 안팍 일도 첫주에는 왠일인지 허리가 뻐근해 꼼짝 않았고 이번주 초 (월요일 1월 6일 밤)에는 카나다에서 한파가 몰려와 최저 4도 (섭씨 영하 16도)의 기록을 세우는 바람에 꼼짝 않았다. 또 여행을 좀 하려해도 주중에는 차 와 호텔이 비싸 결국 주말에 잠시 다녀오는 수 밖에 없었다.
일할 때에는 점심을 싸가고 수요일에만 동료들과 나가 사먹고 토요일에는 집사람과 데이트하고 일요일에는 어머니와 예배를 드린후 동생네와 점심을 먹고 헤어지니까 한주간에 세번 외식을 하게 된다. 나는 남부 특유의 냉차를 즐기는데 아주 큰잔에 나오고 얼마든지 다시 시켜 마신다. 그게 내 약점이다. 외식을 할때만 냉차를 마시는데 휴가 중엔 거의 매일 외식을 했으니 거의 매일 마신거다. 그래서 평소의 질서와 자제가 깨졌다.
그런 중에도 첫주말에는 보스톤 딸내미에게 다녀왔다. 신년에는 둘째놈이 덴버에서 와 며칠 있다 돌아갔다. 이번주엔 동남부의 베가스 격인 Biloxi에 다녀왔다. 모빌 (알라바마)과 빌락씨 (미시시피)는 비행시간이 한시간이 안되고 카지노에 좋은 음식점이 많고 오래간만에 바닷바람도 쐴수 있어 즐겨가는 곳이다. 금요일에 갔다가 하룻밤 자고 어제 토요일에 돌아왔는데 그곳과 아틀란타의 기상관계로 비행기 안에 한시간 반 같혀 있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일등석에 앉았고 빨리 와봐야 이렇다하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맘편히 앉아 주는 음식 먹고 마실것 마시고 책을 읽으며 느긋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3년 내지 5년 후에 은퇴하려는 생각인데 은퇴하면 그저 이런 일로 소일할 것 같다. 평일에는 이런 저런 일을 해야지 하다가는 어영부영 지나고 주말에 차와 호텔이 싼데가 있으면 하루이틀 다녀오고 그러다가 두어달 지나 새벽부터 일어나 비행기 타러 달려나가는게 귀찮으면 집에서 그냥 뒹굴꺼다. 그러니 아침에는 두어시간 걷고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도서관에 가 책을 읽는등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야 할꺼다.
하여간 자유생활을 즐기며 친구들과 놀러다니던 집사람이 나에게 포로 되었던 이번의 위기를 잘 넘긴걸 축하하고싶다. 내일쯤 몸살이 날런지 모르지만 아직은 괜찮다. 말로는 내가 은퇴를 하더라도 자긴 괜찮다고 하는데 그때되면 안색이 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