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 떠나고 사슴각시 나타나고
지난 40년간 나에겐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입고 나갈 내복과 외출복이 잘 개켜져있고 출근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금방 짠 과일주스와 맛있는 점심이 손에 들려졌었다. 저녁에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정성스럽게 준비한 저녁식사가 상다리가 휘게 차려져 김을 모락모락 내고있었다. 과거 수십년간 집사람이 일을 나갈 때도 신비한 마술을 부리는지 금방 저녁식사가 준비되곤 했었다. 지금은 집사람이 일을 나가지 않으니 온갖 정성을 다 쏟아 나를 "섬기는" 것이 송구스럽기 까지 했었다.
이런 행운이 언젠가는 끝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그 불안이 지금 현실로 나타났다. 사람이 편한데는 금방 적응돼도 불편한데는 오랫동안 적응되지 않아 고생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즉 군에 입대한 청년이 군생활에 익숙해 지는데는 수개월이 걸리지만 휴가로 집에 돌아와 지내게되면 그 생활에 적응하는데는 몇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사람이 보스턴에서 애를 낳은 딸내미를 돕는다고 한달 예정으로 떠나간지 꼭 일주일하고 하루가 되었다. 첫손녀를 봐서 기쁜 마음과 혼자 한달을 지낼 걱정이 교차되는 한주일이었다. 떠나기 전에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 냉동과 냉장에 넣어놔 지금까지 근근히 하나씩 녹혀먹으며 연명했다. 점심을 매일 사먹는게 좋지 않을것 같아 지난주엔 평소와 같이 동료들과 바베큐집에가는 수요일만 빼고는 점심을 싸갔다. 나는 외식을 할때 남부특유의 냉차를 즐겨 마시는데 되도록 설탕을 타지 않은 unsweet tea를 많이 넣고 sweet을 조금 넣어 마신다. 그러나 그 양을 보면 놀라 자빠질 정도다. 그렇게 마신 날은 밤에 잠이 깊이 들지도 않는다. 앞으로는 수요일 외에 점심을 나가 먹어야 하게되면 냉차대신 물을 마셔야겠다.
두달전에 부러진 발가락이 아직도 낫질 않고 그것 때문인지 목이며 허리등 다른 문제들도 생길때 각시가 떠나가서 허탈하지만 사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렁각시의 봉사가 있는게 비정상이고 없는게 정상이다. 우렁각시의 봉사는 아무 공로 없는 (신앙고백 같네) 나에게 분에 넘치는 호사였다. 각시 없이 내 일을 내가 스스로 해결 하는게 정상인 것이다. 나에대한 각시의 봉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 적은 없지만 그것에 점차 익숙해 진 내가 나쁜거다.
이번에 도우려간 딸내미를 가까운 친척이 없는 곳에서 각시가 혼자 낳았다. 남편인 내가 프로그래머 교육을 받으려 전근을 왔을 때였는데 어렵게 따낸 프로그래머의 경력을 포기할 순 없어서 집에 올수가 없었다. 조성걸 목사님 내외분이 세 아이를 데리고와 며칠 계시며 도와주셨었다. 목사님으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친했던 목사님은 미국과 한국, 스페인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그때 마눌이 고생을 혼자 감당하며 나에게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줘서 큰 빚을 졌다. 그 덕에 공항에서 막일을 하는 고생을 면했고 일년후 가족을 이사시킨 후에는 생활이 다소 펼 수 있었다 .
오늘 아침엔 암사슴 한마리가 뒷뜰에 나타났다. 교외에 사는 사람들은 사슴이 흔히 나타난다는데 여긴 도심에 가까운 주택가라 사슴을 처음 봤다. 다행히 밭 가까인 안오고 멀리서 나무 아래 잡초를 뜯어먹는다. 소리쳐 쫒아도 숲으로 잠시 숨는척 했다가 다시 나온다. 우렁각시가 사라지니 사슴각시가 온걸까. 낼 아침엔 신비하게 푸짐한 아침상이 차려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