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친구가 있어야한다는데
늙으면 뭣뭣이 필요하다 뭘해야한다 뭔 하면 안된다는 글들이 많이 떠돌아 다닌다. 그중 영어로나 한국어로나 꼭 끼이는 말이 친구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나도 친구가 있다고 할수 있을까. 31년을 다닌후 8년전 떠난 전직장의 친구들은 모두 미국인들로 아직도 매일 이메일을 주고받고 일년에 몇번 만나기도 한다. 매일 보는 현 직장의 동료들은 외국출신이 많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말트고 지내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다 장성한후 만난 친구들이고 문화적 차이도 있어서 유년기와 학창시절 부터 아는 친구들과 같은 친밀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친밀한 친구들은 모두 한국에 있는데 그렇다면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한 친구를 갖고 친구가 있다고 할수 있을까.
내친구 성태는 40여녀전 카나다로 갔다. 우리는 봉원동에서 같이 살며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같이 다녔다. 대학후에는 토론토에서 한번, 디트로이트에서 한번 하와이에서 한번 그렇게 세번을 만났다. 지난 40여년간 불과 세번을 만났을 뿐이나 그친구가 같은 북미땅 어디에 살고있으니 그리 멀리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달 타계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12년전에 마지막으로 본 친구를 잃은 것이 그렇게 서운하다면 그는 멀리 있었고 전화도 이메일도 근래에는 하지 않았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주고받은지 오래지만 있어서 좋은 친구였다.
며칠 전에는 가까운 친척 아주머니를 찾아뵈었다. (서울서는 삼촌 숙모로 부를텐데 경상도분 들이어서 아저씨 아주머니로 부른다.) 작년봄에 아저씨가 세상을 떠나셨다. 아저씨가 특정분야에서 권위있는 분이셔서 은퇴 전에도 아무나 흉허물 없이 만날 위치에 계시질 못했고 은퇴 후에는 더욱 친구가 없으셨다고하신다. 우리같이 이름없는 말단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내또래나 연하의 친구들에게 철없이 구는데 그렇다고 신문에 날것도 아니니 두려울께 없다.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빛 뒤에 사시며 당신의 친구들과는 멀어지신 모양인데 그러다가 아저씨가 돌아가시니 외롭게 되셨다. 은퇴를 하고 시간의 여유가 있는 큰 아들이 큰 위로가 된다고 하신다. 가까이 살면 가끔 찾아뵙고 동무해 드릴텐데 일년에 한번 올까말까하니 안타깝다.
내가 지금 묵고 있는 과천의 집 가까이에 조그만 공원이 있고 지붕이 있는 평상이 있는데 노인들이 몇분씩 누워 주무신다. 서로 이웃으로 아는 사이일 것이고 대화는 나누지 않아도 그냥 같이 공원 평상에 누워있는 것 만으로도 외로움이 덜어지기 때문에 이곳으로들 나오시리라. 어제는 그공원을 지나가는데 할머니 한분이 "아저씨"하고 부른다. "네"하고 가까이 가니 "아저씬 어째 그리 키가 크고 늘씬하세요?" 하신다. 옆에 앉아 이러저러 얘기를 나눴다. 나보다 열살이 위신데 비교적 건강하시것 같다. 나도 십년 후에는 공원에나 나와서 외로움을 달래야할까.
내가 한국에 오면 먼저 만나고 여러번 만나는 친구들이 친한 친구들일꺼다. 그들은 학창시절의 친구들, 옛교회 친구, 옛직장 친구와 처제 부부 등이다. 많은 친구들이 이메일이 보편화 될때는 비서가 있었기 때문에 이메일에 능숙치 못하다. 그러나 이제 카톡은 누구나 배워서 잘쓰기 때문에 서로 소식을 실시간으로 주고 받을 수있어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느낌이 적다. 이친구들이 있어서 나도 늙으막에 친구가 있다고 분명히 말할수 있다. 그들이 있어서 나에게도 친구 없는 노인들에게 생기는 여러 문제가 더디 생길꺼다. 누구보다도 50년을 넘어 알아오고 누구보다 날 잘 알고 나의 잘되고 못되는데 깊은 이해관계가 있는 나의 제일 친한 친구 집사람이 내곁에 있는 한 더욱 그럴꺼다. 그친구가 먼저 떠나가면? 일어날지 아닐지 모를 그런 일은 그때 가서 걱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