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상
여기 미국 동남부에는 산이 많다. 서부의 로키 산맥 같이 웅장하진 못해도 아팔라치안 트레일이 시작되는 이곳 남쪽의 산에는 푸른 숲이 울창하고 송어와 가재가 있는 차가운 시냇물과 아담하고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그래서 한국이나 타주에서 손님이 오면 모시고 다닐 만한 데가 여러 곳 있다. 그런데 “어머 폭포가 너무 예뻐요.” “알록달록 물든 단풍 한가운데 있으니 신선 노름이 따로 없네요” 라고 감격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저런 폭포는 한국에도 있는데…” 라고 하거나 “강원도 어느 어느 동굴에 가 보셨어요? 그게 이 동굴 보다 훨씬 더 멋있어요.” 라고 해 모처럼 시간을 내어 모시고 다니는 사람을 맥 빠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간 곳에서 자기 앞에 새로이 펼쳐진 세상에 감격할 줄 아는 사람이 있고 감격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감격할 줄을 아는 사람이 세상 사는 즐거움을 온전히 아는 사람일 것 같다.
한국서 살 때는 별로 여행을 못했었다. 제주도를 못 가봤고 경주도 못 가봤고 설악산은 군복무시절 미군 헬리콥터를 타고 꼭대기에서 한번 내렸기 때문에 가봤다고 남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는 여행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게 세상이 나에겐 공평했다고 할 수 있다. 미 동남부에서 가기 편리한 유럽과 남미를 주로 다녔다. 반만년 역사의 한국에서 와서 고작 200여년의 미국의 역사에 뭔가 부족함을 느꼈었는데 수천년의 잘 보존된 유럽의 역사가 인상깊었다. 런던에는 30여년간 스무 번도 넘게 갔다. 갈 때 마다 웨스트민스터 교회, 영국 박물관, 영국 도서관 등엘 갔는데 그때마다 전에 못 봤던 새로운 걸 발견하곤 했다. 서양역사 시간에 배웠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배다른 언니 “피의 매리”를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만나고는 “이분들이 살아있었을 땐 원수와 같았었는데 죽어서는 다정하게 같이 누어있구나. 그러나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지도 못 했을 텐데 죽었기 때문에 시간과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가까이서 대할 수 있구나”하고 감격했다. 그 감격이 커서 그분들을 스무 번도 넘게 다시 찾아가 봤다.
여행에는 가보지 못한 곳에 그저 구경 갔다 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박물관, 교회, 궁궐 등을 구경만 하고 돌아오면 여행을 반만 한 것이된다. 그런 유적들이 현지인 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현지 회화책을 하나 구해서 이런 유적들을 만든 사람들의 후손인 그곳 사람들과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그들과 그곳을 더욱 이해하고 친밀감을 갖을 수 있다. 그들은 자기나라 말을 애써 하려는 성의를 고맙게 여기고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틀린 표현을 고쳐 주기도 한다. 그들과 대화함으로 그들의 사는 방식과 인생관과 신앙관도 들을 수 있다. 그러면 내가 사는 동네에서뿐 아니라 세계라는 큰 동네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게 사는 것인지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처음 가는 도시에서도 택시를 타지 않고 기차, 지하철, 버스를 이용하고 같이 탄 승객들과 대화를 하는게 좋다. 여기도 우리같이 눈 두개 코 하나 입 하나 달린 사람들이 살고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들은 생각 하는게 비슷하구나. 서로 표현과 방법은 다를 지언정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노력을 하며 살고 있구나. 새로운 사물뿐 아니라 새로운 동료 인간을 발견 했을 때 비로서 새세상을 발견한 감격을 느낄 수 있다. “이세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이 사람들도 오래전부터 이세상에 있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이다. 여기 잠시 있는 동안 만이라도 이 새 세상의 일부가 되고 이 사람들의 이웃이 되리라.”
또 다른 새 세상을 발견한 것은 나이 50이 넘어 스키를 시작했을 때였다. 콜로라도 보다 유타가 스키 타기에 좋다는 직장 동료들의 말을 듣고 어느 크리스마스 날 용감하게 온식구를 이끌고 유타 주의 알타 스키장엘 갔다. 리틀 커튼우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는 길 양쪽이 눈 덮인 전나무로 가득 차 있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크리스마스 카드였고 그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조지아에는 오지 않으니 너희들을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일년에 서너번씩 그 스키장을 찾아갔다. 한번은 리프트 표를 사려고 줄을 섰는데 앞에 섰던 아줌마들이 매표소 직원에게 시니어 할인을 해주냐고 묻는다. “네 80세 이상은 무료야요.” 라는 대답에 아줌마들이 “아직 거기까진 안 됐어” 하며 깔깔 웃는다. 내 차례가 되어 직원에게 실제로 스키를 타러 오는 80이상 노인들이 있냐고 물으니 가끔 있단다. 그후에 청색 스키복 가슴에 80+라는 빨간 표를 붙인 노인들을 몇 분 봤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몇 년만 더 있으면 공짜 스키를 탈 수가 있다.
운동에 별 재능이 없는 내가 스키는 빨리 늘어 곧 중급 이상 만 탈 수 있는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거기 펼쳐진 세상은 차로 올라올 때 보는 산길의 세상이나 초급 리프트를 타고 중턱까지 올라가 보는 세상과는 또 다른 새 세상이었다. 아 새 눈이 덮인 오솔길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 스키 아래서 뽀드득 뽀드득 눈이 밢히는 소리. “야 이거 신선노름이구나야” 혼자 소리 지르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이 아름다운 세계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축복인데 나는 아직까지는 이 축복에서 제외됐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 축복 안에 들어와 이 축복을 감사히 즐기리라.”
그러나 그때 까지는 더욱 소중한 새 세상은 아직 포장지에 잘 싸여 있었다. 딸내미가 첫 손녀를 안겨줬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모두 다 흑백으로 보는 세상이었다. 할아버지가 되어 손녀를 안으니 일순에 세상이 천연색으로 변했다.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 같이. “아빠가 그렇게 웃으시는 건 처음 봐요” 딸내미가 말한다. 이런 웃음이 나에게 있었나 나도 의아하다. 어느 영화에서 성장한 자녀들이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 하기위해 비디오를 만드는데 한 딸이 아버지 같은 분의 딸로 살아온 특권을 감사한다고 한 후 “그러나 아버지의 딸보다 손녀였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았어요”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로서의 나와 할아버지로서의 내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후에 손녀를 둘 더 얻었다. 세상이 두번 더 찬란한 천연색으로 변했다.
며칠전 뒷마당에서 손녀들과 연을 날리며 노는데 큰애가 “하라브지, 보세요. 예쁜 꽃이야요”하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뭔가를 쥐고 뛰어온다. 민들레 꽃이다. 그 애 손에 들린 꽃은 약을 쳐 죽이기 바빴던 하잘 것 없는 잡초 꽃과는 다르게 내 눈에 들어왔다. 선명하게 노랗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꽃, 세상에 더 할 수 없이 예쁜 작은 손에 들린 예쁜 꽃이다. 어느 사람이 “길거리에 자라나는 들풀의 기적을 보고 감동치 않는 사람은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도 감동치 않을 것이다” 라고 했다 던데 그동안 유럽으로, 스키장으로 달려가 새 세상을 기쁨으로 맞이 했었던 나는 할아버지로의 총천연색 세상을 보게 된 후 그 새 세상의 주연 스타 큰 손녀를 통해 내 뒷마당에 있는 아름다운 새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발견한 새 세상은 그전까지 알아왔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었는데 앞으로도 새 세상을 발견할 것이고 그 새 세상도 지금까지 발견한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좋은 세상일 것을 의심치 않는다. 뒷마당에 아름다운 새 세상이 있는 걸 손녀가 가르쳐 줬으니 멀리 갈 것도 없다. 집 주위와 동네에서도 많은 새 세상이 내가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세상에서 열심히 산 후에는 나의 경험과 상식과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새 세상으로 갈 것이다. 그때 나는 회화책과 스키가 필요 없을 것이고 그저 감사함으로 그 세상의 일부가 되고 그곳 사람들의 이웃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