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평생 곤욕을 치를 것을 강도가 생각할까
2017년에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한인업소를 비롯한 여러 아시아인 업소들에 강도가 들었다. 그중 하나는 조선족 여인이 운영하던 연경식 꼬치구이집. 강도 두명이 들어와 중국인 손님 두명에게 총을 쏘고 주인여자를 계산대로 끌고가 엎드리게 하고는 가만 있는 사람을 뒤에서 쐈다. 재미로 쐈을까? 인간 쓰레기인 자신을 우월하게 만들어주는 총의 위력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범인들은 종횡무진 범죄행각을 계속하다가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지방경찰, 주 수사국, 연방 수사국의 합동 수사망에 걸려 잡혔다. 한놈은 유죄를 시인하고 수사에 협조를 해 28년 형을 받았다.
한놈은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으로 갔는데 연방범죄로 인정 되어 연방검사가 재판을 준비했다. 수십명의 증인을 멀리는 칼리포니아에서 까지 불려들어 수주간에 걸쳐 인터뷰를 하고는 그들은 재판에서 일주일에 걸쳐 증언을 했다. 그중에는피해자들도있었고 현장에 출동했던 각 시의 경찰도 있었고 인근 가게를 다니며 동영상을 수집한 형사도 있었다.
그중에는 꼬치구이집 여주인도 있었다. 그녀가 증인대에 앉자마자 눈물이 걷잡을 겨를이 없이 쏟아졌다. 그사건으로 몸이 망가졌고 가게도 잃어버려 살길이 막막하다고했다. 변호사의 표정에 측은해 하는 것이 보였고 영화에 나올듯한 증언에 대한 무자비한 반격을 자제했다. 범인은 당연히 유죄를 받았다.
근 일년후인 지난주에 선고가 있었다. 5중 무기징역. 한사람에게 총을 쏜 것에 한번의 무기징역을 받은거다. 피해자가 한사람이라도 죽었으면 사형을 받았을꺼다. 연방제도에는 가석방이 없어서 선고된 형을 고스란히 다 살아야하니 앞으로 태양을 볼 일이 없을꺼다.
피해자 조선족 여인은 조부모님이 이북에서 중국 훈춘으로 건너갔고 부모님은 훈춘에서 태어나셨다고했다. 자기도 훈춘에서 태어나 한국 학교를 다녀 중국말은 잘 못한다고했다. 말하자면 한인 3세다. 나에게 한글로 써보낸 글을 보니 철자법과 떼어쓰기가 거의 완벽하다. 혹 누가 도와줬냐고 물으니 밤에 혼자 썼다고했다. 훈춘 한국 학교에 치사의 말을 전하고싶다.
나를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고했다. 어머니가 60 대에 큰병도 없으셨는데 돌아가시고 곧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자기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총을 맞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했더니 사건 한달 전에 딸이 애기를 낳았는데 자기 까지 죽으면 안돼니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했다.
총을 맞고도 경찰을 부를 용기가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 전화기를 들었지만 말이 나오질 않아 다른 사람이 도와서 신고를 했다고했다. 등으로 들어간 총알이 배로 나오며 구멍을 뚫어 말이 나오지 않은것을 나중에 알았다고했다.
범인이 종신형을 받았다는걸 들었을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하니 그들로 인해 몸버리고 가게를 잃어버려 사는게 막막해 한편으론 마땅한 판결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나이에 중형을 받아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다고했다. 그러나 그놈은 자기같은 피해자를 다시는 만들지 못할테니 잘됐다고도했다.
이런 애절한 사연이 그놈들이 휩쓸어간 십여개의 업소에 몇개씩 있을꺼다.
무분별한 범죄로 잠시 마약 살 돈이나 챙겼을지 모르나 죄없는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것은 개의치 않았으리라.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우리도 일단 총을 맞고 죽지 않고 살았으먼 다행이란 생각만 하지 배에 구멍이 뚫려 말이 나오지 않는다던지 끔찍한 상처를 볼 때마다 비관이 된다던지 날이 찌뿌드하면 상처와 온몸이 쑤신다던지 그때의 악몽으로 잠을 못이룬다던지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거 아닌가?
그여인은 20년을 미국에 살면서도 신분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우리기관의 몇 관계자들은 정부차원에서 다른 기관과 협조해 그녀를 도울 방법을 찾고있다. 동시에 개인적으로 한인 사회를 비롯한 일반 사회에 사정을 알리고 협조를 구할 방법을 찾으려한다. 조선족이라고 한인사회에서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을것 같은 우려도있지만 어쨋든 우리의 혈육이고 조선족이 된게 자신의 잘못도 아니니 다소간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