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1Kim 2023. 3. 15. 07:17

미시간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을 때 동네 가게에 들렸다. 간단한 간식 거리를 고르고 있는데 남루하지만 깨끗한 옷을 단정히 입은  소년 하나가 야채칸에서 옥수수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주인이 소년에게 말했다.
 
"얘 케빈아 잘 지냈니? 엄마는 좀 어떠시니?"
 
소년: "네 밀러 할아버지, 전 잘지냈어요. 엄마는 많이 나으셨어요."
 
밀러씨: "그래 잘 됐구나. 옥수수가 탐스럽지?"
 
소년: "옥수수 참 싱싱하고 맛있게 생겼네요. 그런데 살 돈이 없어요."
 
밀러씨: "그래 돈은 없어도 뭐 다른거 옥수수 하고 바꿀 껀 없니?"
 
소년은 호주머니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구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바꿀 꺼라고는 이 구슬 밖에 없어요."
 
밀러씨: "참 예쁘구나. 그런데 빨간 색이구나. 할아버진 파란걸 더 좋아해. 집에 파란거 있니?"
 
소년: "네. 하나 있어요."
 
밀러씨: "그럼 오늘은 옥수수를 넉넉히 가져가고 담에 올 때 파란 구슬을 가져와라."
 
소년: "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두사람의 대화를 듣는 동안 밀러 부인이 나왔다.
 
밀러부인: "저애는 가난해 새옷을 사 입지는 못해도 엄마가 헤어진 옷이나마 깨끗이 빨아 단정히 입혀요. 저이는 그렇게 파란 구슬을 가져오라고 하고는 색갈이 다르다느니 너무 크다니 작다니 하는 핑계로 받지를 않고 다른 구슬을 가져오라 하고는 채소를 주어 보낸답니다. 우리 동네에 그런 애들이 둘이 더 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찡 해진 채 간식 값을 지불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수년 후 친구들을 만나러 미시간에 갔을 때 밀러씨가 엇그제 세상을 떠났다고 친구들이 말해 줬다. 마침 그날 저녁 고인을 마지막으로 대면하는 뷰잉 시간이 있다고 해서 같이 갔다. 문상객이 관 앞에 줄을 서 있는데 우리 앞에 훤출한 청년 셋이 서 있었다.
 
한 청년은 육군 장교 정장에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고 다른 둘은 양복을 깨끗이 갖춰 입고 있었다. 셋은 관에 이르자 한사람씩 생명이 떠난 밀러씨의 오른쪽 손을 잠시 잡고 무엇인가 말을 하고는 밀러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눈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떠나갔다.
 
밀러 부인이 나를 알아 보고 내 손을 잡고 밀러씨 앞으로 갔다. 
 
밀러 부인: "쟤들이 그때 제가 말했던 그 세 아이들이야요. 지금은 다들 잘 커서 사회인으로 한몫씩을 하고 있지요. 오늘 밀러 할아버지에게 빚진걸 갚으러 온 것 같아요."
 
관에 이르러 밀러 부인은 밀러씨의 힘없는 손을 조금 들었다. 손 밑에는 잘 닦인 반짝이는 빨간 구슬 세개가 놓여 있었다.

밀러 부인: "밀러 할아버지는 오늘 미시간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었어요"
 
밀러씨는 거두는 생을 산 것이 아니라 뿌리는 생을 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