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원교회 소식지 기고문

23.09 되찾은 집사의 직분

Young1Kim 2024. 6. 14. 05:06

내가 사는 아틀란타 지역에는 나를 장로로 부르는 이들도 있고 전도사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나는 봉원교회에서 선생이었다가 장가 집사의 직분을 받았었는데 29 되던 해에 미국에 와서는 자동차 공업의 중심지 디트로이트의 연합장로교회에서 다시 선생이 되었다. 나를 아는 장로 한분에게서 내가 한국에서 청소년층을 지도 했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김득렬 목사님이 나에게 영어권 중고등부를 맡기셨다.

 

한편 교회 사회에서는 아직 안정 직장을 찾아서 닥치는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일년 델타 항공에 취직 되어 비행장 램프에서 일했다. 일단은 생활이 안정 됐고 4 후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선발 되어 남부 아틀란타의 본사에 와서 교육을 받고 근무하게 됐다.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에서 역시 영어권 청년층을 지도 했다. 년후 안수집사로 선출 되었고 1994년에는 장로로 선출 되어 미주 한인교회에서 처음으로 이세위원회를 구성해 인도했다.

 

한편 직장에 계속 다니며 야간과 주말에 우리 교단 계통의 신학교에 수년간 다니고 있었는데 행정의 지도자인 장로 보다는 신앙의 지도자인 전도사로 봉사하고 싶었다. 미국에 와서 20년을 줄곧 영어권 젊은이들과 지내서 같은 세대의 한국어권 교인들과의 친교도 필요했다.

 

1996 아틀란타 올림픽이 있었던 해에 아틀란타 다른 지역 같은 교단의 베다니 교회 김진훈 목사님이 불러 주셨다. 장로 임기 3년을 마치지 못하고 옮겨 갔다. 목사님은 제주도 출신으로 순박하신 분이다. 나를 믿고 많은 일을 맡겨 주셨다.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알라바마 남쪽 지방에 임시목사로 가신 후에도 여행을 하실 때면 달려가 설교단을 지켜 드렸다.

 

그래서 연합 교인들은 나를 장로로 부르고 베다니 교인 들은 전도사로 부른다. 교회 교인들이 좋은 추억을 불러 일으켜 주는 순수한 믿음의 동역자들이다. 선생, 집사, 장로, 전도사 - 교회의 직책은 서로 높고 낮은 것이 없고 모두 귀한 직책이다. 봉원 교회에서는 연세 많으신 교인들이 나를 영원 집사라고 부르시는게 정다웠었다. 창립 65주년 기념 행사 덕분에 봉원교회와의 인연을 다시 찾고 원래의 집사로 돌아간 것은 근래 들어 제일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