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이야기

영적 삶

Young1Kim 2008. 6. 23. 05:47

한번은 중국인과 인도인 동료와 점심식사를 한적이있다. 어쩌다 영에 대한 대화를 하게되었는데 중국인 동료는 영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에서 학교 선생들은 물질적인 교육만 시키니 그러리라 생각 되었다. 인도인 동료는 어째 영이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못지 않게 의아해한다. 나는 세상 사는 재미를 반만 알고 살아왔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

믿는 이로서 우리는 육의 세상에서 삶과 동시에 영의 세상에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안다. 영의 세상은 가상의 세상이 아니고 육의 세상 만큼이나 사실적 세상이다.

영의 삶은 육의 삶이 끝나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죽으면 영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영의 삶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육의 삶과 동시에 영의 삶을 사는데 어떤이들은 육의 삶은 빈곤해도 영의 삶은 부유하다. 예전 마리에타의 베다니 교회에서 장년 성경공부를 인도할 여집사 한분이 물었다. 나보다 몇살 위의 분이었는데 자기가 어렸을 동네에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아주머니가 자기를 만나면 교회를 다니라고 권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것이다. 얼마전 한국엘 다녀왔는데 아주머니는 아직도 가난했는데 자기를 만나 교회를 다닌다는 말을 듣고 몹시 기뻐했다는 것이다. 여집사님의 질문은 그렇게 믿음이 좋은 분이 그렇게 가난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머니가 육적으로는 빈곤하지만 영적으로는 우리 누구보다도 부유하다고 대답했지만 여집사가 그말을 이해한 같지는 않았다.

비엔나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다가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갔던 Victor Frankl 극히 처절한 상황에서 진정한 인간애가 나타난다고 한다. 혹독한 겨울에 구멍난 구두사이로 눈이 녹아들어가고 다시 얼어 발이 퉁퉁부어 구두를 신을 수가 없어 맨발로 눈덮인 산에가서 작업을 하고 밤늦게 춥고 배고프고 지쳐 저녁 식사로 삶은 감자 한조각을 얻어먹을 기대로 희망을 갖고 수용소에 돌아왔다. 그런데 감자 창고에 누가 들어가 감자를 훔쳐갔다고 그날 식사는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두 절망을 하고 쓰러져있는데 그렇게 지치고 춥고 배고프고 절망적 현실에서 동료 죄수들에게 돌아다니며 절망치 말라.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언젠가는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실것이다라고 위로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허기로 쓰러져 죽기 전에 먹으려고 주머니에 귀하게 간직했던 빵조각을 자기보다 병약한 사람에게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유태인 수용인들은 육적으로는 모두 극심히 빈곤했지만 그중 몇은 영적으로 몹시 부유했고 부유함은 육적으로 극심히 빈곤한 가운데에서야 나타났다.

많은 교인들이 육적인 예수에게만 매달리는 것을 흔히 본다. 예수를 믿으면 많이 벌고 병앓지 않고 .건강히 오래 살고 애들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갈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적 부귀 영화를 약속치 않으셨다. 제자들이 가방들고 3년을 따라다니다 결국 다다른 곳은 외롭고 처절한 십자가 밑이었다. 육적으로는 끝났다. 절망해 고향에 돌아가 다시 본업인 어부가 되었던 제자들이 갑자기 뛰쳐나가 참혹한 죽음을 맞은 것은 육적으로는 끝났지만 영적으로는 이제 시작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한나라의 정치적 지도자가 되거나 가난을 면케 하거나 병든 사람을 고치거나 하는데서 멈추기에는 너무 크신 분이다. 그는 우리 죄로 상해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어 우리가 영적 구원을 얻기를 원하신다. 끝나지 않을 영적 구원의 약속은 언젠가 없어질 육적 부귀 영화의 약속에 비길수 없이 크다.

육적 , 육적 부유, 육적 가난, 육적 젊음, 육적 노약, 육적 고통, 육적 건강 육적 모든것은 언젠가 끝난다. 좋은 것도 끝나고 나쁜 것도 끝난다. 프라하의 유태인 장례소 (Ceremonial Hall) 이런 안내글이 적혀있다: " 죽으면 누구나 평등하다. 여기서는 부자나 가난뱅이나 똑같이 �기고 옷입혀 묻는다." 죽어서 육적으로는 모두가 평등해 진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죽음이 없고 부유와 빈곤의 차이도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영적인데 희망을 갖고 살지만 육신을 입고있는 아직은 육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한다. 육적 삶을 충실히 살지 않는 사람이 영적 삶은 충실히 살리라고 생각할 없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 직장인은 일을 충실히, 사업인은 자기 사업을 하나님의 사업으로 알고 열심히 경영해야겠고 은퇴인은 무엇인가 집주위에서 지역사회에서 일을 찾아 열심히 봉사해야겠다. 우리가 세상을 열심히 살고 상으로 받을 것은 안식이다. 안식이 상이 되려면 항상 피곤하도록 열심히 살아야한다.

그러나 끝날 육적인 것을 위해 영적인 것을 망쳐서는 안되겠다. 일시적인 것을 위해 영원한 것을 망쳐서는 안되겠다. 육적인 것에 열심히 살며 그러나 눈은 높이 영적인데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