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시절 이야기 5

"모든걸 주님께 맡겨!"

비가 억수로 퍼붓는 밤이었다. 우리는 완전무장을 하고 연병장에 도열해 오늘 밤엔 또 어디로 끌려나걸런지 초조하게 작전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3월 4일에 공군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입교해서 7월 2일에 임관 하기까지 120일 간 거의 매일 밤 불려나가 이런 특별 훈련을 받았다. 야밤 훈련이 없으면 언제 불려나갈런지 불안해 잠을 못잘 지경이 됐다. 우리 7구대의 옆에는 8구대가 섰고 그옆에는 특수간부 구대가 섰다. 특간 후보생들은 군의관, 약사, 군종 목사, 군종 승려등이 될 사람들로 일반 대학보다 교육 과정이 긴 의대나 신학대학을 나와 우리들 대부분보다 나이가 많았다. 훈련기간은 우리 일반간부 후보생 보다 짧아서 우리보다 늦게 입교해 우리는 이미 여러번 겪은 야간 훈련을 처음 받게되니 우리보다 더욱 긴장..

후보생 시절

후보생 시절은 일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4개월로만 기억 되는데 그러기에 훈련이 끝났을때의 성취감이 더욱 귀중했다. 나는 원래 키만 컸지 약골이었는데 입교 전 몇달을 교회친구가 날 데리고 동네를 매일 뛰어서 준비 시켜준 덕을 톡톡이 봤다. 또 하나하면 굽히고 둘하면 펴는 팔굽혀 펴기 첫 기합 후에 내 다음다음 자리의 정후보생이 "야 너 그렇게 하는게 아니데이"하면서 먼저 훈련소를 다녀간 선배로 부터 받은 요령을 가르쳐줘 많이 도움이 되었다. 정후보는 애인이 보내오는 담배를 자기가 다 갖고 있으면 남들에게 뺏기니까 나한테 반을 맡아 달라고 했는데 나한테 준 담배는 결국 내가 다 피우게 됐어도 불평 않고 다음에 또 담배가 오면 나에게 반을 주곤 했다. 몇년전 한국에 갔을때 천수를 만나러 부산에 갔는데 같이 나온..

제대 말년에 형편 반짝 피다

일반영어교관실장 양대위가 전역을 하며 대전 시내에 영어학원을 차렸다. 기술영어 교관이던 김상사도 전역을 하고 양대위의 학원에 강사로 갔다. 어느날 양대위가 교관실로 전화를 해 김상사가 자기 학원을 차려 나갔는데 그의 반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김상사의 반에 가보니 여닐곱명의 학생이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새 선생을 쳐다본다. 아니나 다를까 한달이 지나곤 거의 반이 학원을 떠나버렸다. 나도 양원장에게 면목이 없어 그만 뒀다. 얼마후 양원장이 새 반을 만들어줄테니 다시 시작해 보라고 권했다. 두반을 구성해 운영하면 한달 후에는 학생 수가 반으로 주는데 그 두반을 합쳐 한반으로 운영하면 그반은 꾸준히 계속 된다고 두반을 맡아보라고했다. 나는 두반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한반만 맡기로 하고 다시 나갔다. 양..

무서운 학생 영어교육대대에 입교하다

하루는 아침부터 교관들과 피교육자 장교들이 수근거린다. 무서운 사람이 입교를 한다는거다. 켈로 부대 출신으로 이북을 수없이 드나들며 매번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불사신이라고했다. 지금은 서해안의 한 섬에서 험한 애들을 모아 특수교육을 시킨다고했다. 일년 전에 학생 하사에게서 등에 칼부림을 당했다는 선배 문중위는 그사람을 자기 반에 넣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신참인 나는 철이 없고 깡만 살아서 내가 맡겠다고 자원했다. 내가 인격적으로 대하는데 설마 나에게 해를 가하랴. 드디어 그사람이 나타났다. 피교육자 장교들이 "어 저친구 상사 계급장 달고 왔네" 하며 놀란다. 서해안의 섬에서는 공수부대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훈련 시킨다고 했다. 내반에는 김상사외에도 하사관 몇과 대위와 소령 몇도 있었는데 모두들 긴..

첫당직 이야기 - 외출 금지 시기에 십여명 외출 시키다

내가 다닌 대학에는 ROTC 프로그램이 없어서 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군복무를 하려면 공군이나 해군의 간부후보생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없었다.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해 공군을 선택했다. 1968년 3월 4일 부터 18주 기본 군사훈련을 받고 7월 2일에 소위로 임관했다. 교육특기를 배정 받고 서울 공군본부에서 두달 간 특기교육을 받은 후 기본 군사훈련을 받았던 대전 기술교육단으로 다시 내려가 통신학교 영어교육대대에 부임했다. 외국에 나가 훈련을 받을 장교와 하사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게 주 업무였다. 우리 대대에는 교관이 거의 모두 장교였고 하사관이나 사병이 몇명 없었으나 통신학교에는 장기 특기교육을 받는 사병과 하사관 피교육자가 700 여명이 있었다. 낮에 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그다지 힘들다고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