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아침부터 교관들과 피교육자 장교들이 수근거린다. 무서운 사람이 입교를 한다는거다. 켈로 부대 출신으로 이북을 수없이 드나들며 매번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불사신이라고했다. 지금은 서해안의 한 섬에서 험한 애들을 모아 특수교육을 시킨다고했다. 일년 전에 학생 하사에게서 등에 칼부림을 당했다는 선배 문중위는 그사람을 자기 반에 넣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신참인 나는 철이 없고 깡만 살아서 내가 맡겠다고 자원했다. 내가 인격적으로 대하는데 설마 나에게 해를 가하랴.
드디어 그사람이 나타났다. 피교육자 장교들이 "어 저친구 상사 계급장 달고 왔네" 하며 놀란다. 서해안의 섬에서는 공수부대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훈련 시킨다고 했다. 내반에는 김상사외에도 하사관 몇과 대위와 소령 몇도 있었는데 모두들 긴장돼 보였다. 김상사는 일반 학생들과 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아 저윽이 안심했다.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모범학생이었다. 휴식 시간에는 다른 학생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가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험한 배경과는 180도 다르게 차분하고 겸손하게 얘기했다. 전쟁이 끝나고 켈로 부대가 해산한 후에 육군에서 소위를 시켜주겠다고 했는데 공군에서는 대위를 시켜주겠다고 해서 공군으로 왔다는거다. 그런데 막상 오니 중사를 달아줬다고 속았다고 했다.
미공군에게서 시체처리 방법을 배우러 오끼나와를 가려고 영어를 배우러 입교 했다고했다. 그때는 머리 없는 시체가 한강에 심심찮게 떠내려 왔는데 시체 임자의 머리가 발견되면 피해자의 신원이 알려지게 된다. 그러니 머리를 화학 처리를 해 아예 없앤다고했다. "지금은 제가 필요하니 군에서 쓰고 있지만 언젠가 필요없게되면 그냥 내보내지는 못합니다. 아는게 너무 많거든요. 제가 배워오는 그 방법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 당할꺼야요."
이북은 남한에 간첩을 보내어 장기간 활동케 하는데 남한에선 이북에 간첩을 보내지 못한다고 했다. 이남의 환경과는 달리 이북에선 간첩이 숨어서 활동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북에 보복행위를 해야할 일이 생기며 특수요원들이 올라가 사람 몇을 죽이던지 한동네를 불사르던지 하고는 즉시 돌아온다고 했다.
한 주말에는 본대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니 교육 중인데 주말에 본대에 가야합니까?"하고 물었더니 한주 걸러 한번씩은 낙하산을 타야한다고했다. 그러면서 "교관님, 이번엔 뛰어 내리려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군요" 한다.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이사람은 잔뼈가 굵기도 전부터 낙하산을 타고 총탄이 날리는 전지에 뛰어 내리던 사람인데 훈련으로 한번 뛰어 내리는데 다리가 떨렸다니? 매번 뛰어 내릴 때 마다 비장한 각오로 뛰어 내렸구나. 나는 무슨일을 하던 얼마나 자주하고 익숙해지던 이렇게 비장한 각오로 매번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인생의 귀한 교육을 받았다.
하루는 젊은 애들을 출동을 못시키고 너무 오랫동안 섬에 가둬놓아 곧 터져버릴 것 같다고 걱정을 했다. 일이년 지나 실미도 사건을 방송으로 듣고 신문을 보니 김상사의 이름이 보였다. 올 것이 왔구나.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와는 달리 어린 양 같이 순하던 그. 전후의 혼동 속에 장교가 될 약속을 받았다가 하사관이 됐던 그. 그러나 일단 군에 들어왔으니 제발로 걸어 나갈수 없었던 그. 군이 필요 없다고 결정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릴 것을 알고 담담히 살아왔던 그. 이북을 수없이 드나들고도 매번 살아 돌아온 불사신. 결국은 자신의 피교육자들로부터 무참히 살해 당한 그. 내 등에 칼부림을 하는 대신 인생의 중요한 공부를 시켜줬던 그. 50년이 지난 지금도 김상사의 조용조용한 이야기가 귓속에 들리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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