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로 퍼붓는 밤이었다. 우리는 완전무장을 하고 연병장에 도열해 오늘 밤엔 또 어디로 끌려나걸런지 초조하게 작전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3월 4일에 공군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입교해서 7월 2일에 임관 하기까지 120일 간 거의 매일 밤 불려나가 이런 특별 훈련을 받았다. 야밤 훈련이 없으면 언제 불려나갈런지 불안해 잠을 못잘 지경이 됐다.
우리 7구대의 옆에는 8구대가 섰고 그옆에는 특수간부 구대가 섰다. 특간 후보생들은 군의관, 약사, 군종 목사, 군종 승려등이 될 사람들로 일반 대학보다 교육 과정이 긴 의대나 신학대학을 나와 우리들 대부분보다 나이가 많았다. 훈련기간은 우리 일반간부 후보생 보다 짧아서 우리보다 늦게 입교해 우리는 이미 여러번 겪은 야간 훈련을 처음 받게되니 우리보다 더욱 긴장했으리라.
후두둑 후두둑 철모를 치는 빗소리를 뚫고 특간 구대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걸 주님께 맡겨!" 수주간의 교육을 통해 구대장들은 인정사정 없는 사람들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의 말투는 앙칼진 경상도 사투리인데 내용은 놀랍게도 큰 위로의 말이었다. 그날 밤 훈련은 그 말을 되새기며 이겨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훈련이 끝나고 대대에 배속 되어서도
제대하고 직장을 찾아 다닐 때에도
무작정 도미해 이 일 저 일 닥치는대로 덤벼들 때도
좋은 직책을 받아 본사로 전근되었으나 집을 팔지 못해 일년간 장거리 출퇴근을 했을 때도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이병원 저병원으로 모시고 다닐 때도
그후 50여년간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특간 구대장의 "모든걸 주님께 맡겨" 앙칼진 경상도 사투리가 뇌리에 울려 오고 모든걸 이겨내게 해줬다. 나뿐 아니라 그날밤 그 말을 들은 많은 사람이 평생을 그말에 의지해 살았으리라. 감사합니다 특간 구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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