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ra의 훈훈한 이야기 8

정장 공군 사병의 사명

예복으로 정장을 한 젊은 공군 사병이 병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자 간호원이 그의 손을 잡아 병실에 누워있는 노인의 침대로 이끌어 갔다. "어르신, 아드님이 오셨어요." 젊은 군인은 노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노인은 눈을 뜨거나 말을 하지는 못하면서  군인의 손을 힘없이 마주 잡았다. 간호원이 의자를 권했으나 군인은 사양하고 노인의 손을 잡은채 부동자세로 서서 밤을 새웠다. 새벽녂에 군인이 간호원에게 가서 말했다. 군인: 별세 하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누구신가요? 간호원: 어머나 그분의 아드님인줄 알았어요. 부친이 아니시라고 왜 말하지 않으셨어요? 군인: 저는 공군하사 김수근이 엇그제 전사 했다는 보고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고 김하사의 부친 김태영 어르신을 찾아 왔었어요. 간호원: 돌아가신 분이 바로 김..

우리 교회의 부자 가족

(다샤 타란 씀) 1946년의 부활 주일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14 살이었고 여동생 아시는 12 살, 언니 달린은 16 살이었다. 아빠는 어린 일곱 애들을 엄마에게 남기고 5년전에 돌아 가셨다. 그때는 더 큰 언니들은 시집을 갔고 오빠들도 집을 떠났다. 부활 주일 한달 전에 목사님이 부활 주일에 가난한 가정을 위해 희생 헌금을 하겠으니 정성껏 준비 하라고 광고 하셨다. 우리는 집에 와서 헌금할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의론했다. 우선 감자를 50 파운드 사서 그것으로 한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면 한달 식품비에서 20 달라를 절약 할 수 있었다. 되도록 불을 켜지 말고 라디오도 듣지 말고 전기료를 아끼기로 했다. 언니와 나는 집집마다 다니며 집안팍을 청소해 줬고 애들을 봐주고 돈을 모았다. 면직..

인생에서 중요한 것

(리시스 블랙스톤 씀) 내 아들이 6살 때였다. 두개골과 척추 수술을 두번째로했다. 첫번째 신경외과 수술이 잘못 되어서다. 두번째 수술 팀은 애의 허벅지 뼈를 두개골에 이식하고 두개골과 목뼈를 티다늄 막대기로 연결하는 큰 수술을 했다. 수술 후 수개월간 머리와 척추에 철 보호대를 달고 살아야한다.이 밤에 애는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이밤에 애가 깨어나기나 할런지 깨어난다면 어떤 모습일런지 알 수 없다. 이밤에 건넌방의 아이가 수술 실패로 사망했다. 이밤에 나는 애가 훌륭한 운동 선수가 되거나 학교 점수를 잘 받아 오거나 좋은 학교에 가거나 다른 영광스러운 일로 나를 자랑스런 엄마로 만들어 줄 것이란 허망스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밤과 그리고 그후의 모든 밤에 나는 오로지 애가 깨어나 주기만 바..

빨간 구슬

미시간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을 때 동네 가게에 들렸다. 간단한 간식 거리를 고르고 있는데 남루하지만 깨끗한 옷을 단정히 입은 소년 하나가 야채칸에서 옥수수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주인이 소년에게 말했다. "얘 케빈아 잘 지냈니? 엄마는 좀 어떠시니?" 소년: "네 밀러 할아버지, 전 잘지냈어요. 엄마는 많이 나으셨어요." 밀러씨: "그래 잘 됐구나. 옥수수가 탐스럽지?" 소년: "옥수수 참 싱싱하고 맛있게 생겼네요. 그런데 살 돈이 없어요." 밀러씨: "그래 돈은 없어도 뭐 다른거 옥수수 하고 바꿀 껀 없니?" 소년은 호주머니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구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바꿀 꺼라고는 이 구슬 밖에 없어요." 밀러씨: "참 예쁘구나. 그런데 빨간 색이구나. 할아버진 파란걸 더 좋아해. 집에 파란거 ..

근심 나무

시골의 백년 가까이 된 집을 같이 수리 하려고 동네 목수를 불렀다. 일을 나온 첫날 목수는 타이어 하나가 터져 한시간을 손해 보고 일하는 동안 전기 드릴이 고장 나고 그럭저럭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25년은 됨직한 낡은 트럭이 발동이 걸리질 않는다. 내가 차로 집에 데려다 주는 내내 그는 낙심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잠시 들어와 자기 식구를 만나고 가시라고 해서 같이 차에서 내렸다. 문 앞의 작은 나무에 이르자 그는 두손으로 나무 가지들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우울한 표정이 환한 웃음으로 바뀌고 애들을 껴안고 아내에게 키스를 했다. 잠시후 내가 차로 가는 동안 나를 따라와 배웅을 했다. 작은 나무에 이르러 아까 본 것..

부잣집 아들의 가난 체험

부자 아버지가 아들을 가난한 농가에 보내 또래 애들과 지내며 가난을 체험하도록 했다. 며칠 후 돌아온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아 가난하다는게 뭔지 배웠니?" 아들: 네 많이 배웠어요. 아버지: 그래 뭘 배웠니? 아들: 우리는 개가 한마린데 그애들은 개가 네마리야요. 우리는 뒷마당의 10 미터 풀에서 수영을 하는데 그애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시냇가의 맑은 물에서 수영을 해요. 우리는 외국제 등불로 마당을 밝히는데 그애들은 밤하늘을 밝은 별빛이 비춰요. 우리집 앞쪽으론 이웃집이 있는데 그애들 앞마당엔 지평선끝이 안 보여요. 우리집에선 시종들이 우리를 도와주지만 그애들은 서로 도와줘요. 우리집은 담장으로 보호하지만 그애들은 이웃이 보호해줘요. 아버지는 할말을 잊었다. 아들: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지를 깨닫는 좋..

잔치 손님

어떤 사람이 살찐 소를 잡아 장작불에 굽고는 딸에게 말했다. "딸아. 마을에 가서 우리의 친구와 친척과 이웃을 모두 불러라. 큰 잔치를 벌리자." 딸이 길에 나가 외쳤다. "아빠 집에 불이 났어요. 빨리 와서 도와 주세요!" 소수의 사람들이 달려왔다. 나머지는 못들은 척하고 오지 않았다. 온 사람들은 즐겁게 먹고 마셨다. 아빠가 딸에게 물었다. "딸아 어찌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과 아예 보지도 못한 사람들만 왔느냐? 우리의 친구 친척 이웃은 왜 다 안왔느냐? "아빠 이분들은 잔치에 온게 아니고 아빠 집의 불을 꺼주러 왔어요. 우리가 어려울때 달려와 도와주는 이분들 만이 잔치에 먹고 마실 자격이 있어요." 교훈: 우리의 어려움에 동참한 사람이 우리의 친척이고 이웃이며 우리의 성공의 잔치에 초대받는다.

네분의 부모님

어쩌다 들어가게된 quora.com이라는 곳에는 실제 인물들의 실제의 훈훈한 이야기들이있다. 여기 한 이야기 "이분은 내 아빠이다. 엄마 집의 잔디를 깎고 있다. 두분은 28년전에 이혼했다. 엄마는 무릎이 안좋고 의부는 먼 지방에서 일을 한다. 우리는 네분 부모님을 모신 운좋은 자녀들이다. 그분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자녀를 잘 양육해 다른이를 정중히 대하고 가족을 사랑하게 하는거다. (32살난 애들도 포함해서) 후기: 아빠가 내 글을 많은이들이 보고 댓글을 단 것을 보고 허허 웃으며 "난 성인이 아냐" 하신다. 아빠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친절해야한다는걸 실천으로 가르치는 분이다." https://qr.ae/pGEZ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