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4년전인 2007년 가을에 한국에 나갔을때 서강64 동기들을 박희민의 그린컵스 카페에서 만난적이 있었다. 희민이를 빼고는 다들 졸업후 처음보는 얼굴들이었으나 수년간 카페를 통해 글과 사진들을 주고받은지라 조금도 오래간만에 만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때 카페에서의 친교를 귀하게 생각하고 나를 보러 나왔던 안정숙, 김성한, 홍경순, 최정소, 김형민, 하종인 동기들과 자리를 마련해준 박희민형에게 감사한 마음을 지금도 따뜻이 갖고있다.
지난 토요일, 11월 19일에는 미주서강64 동기들을 만났다. 내가 언제 LA에 올런지를 김신홍 미주지역 대부가 몇주전부터 전화로 확인하고는 도착하자마자 날자를 잡아 만난것이었다. 손님이 좀처럼 찾지않는 남부 촌구석과 달리 LA지역은 손님을 자주 치룰것이어서 나때문에 부담을 주고싶지 않아 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호의를 고맙지만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김회장의 어조가 쉽사리 사양을 받아들일것 같지 않고 또 나도 카페에서만 보던 얼굴들을 실제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강해 만나자는 초청을 받아들였다.
남부 촌놈이 일주간 LA에서 지나며 교통체증을 경험한 바였기에 토요일이라도 교통사정이 안좋을것을 감안해 넉넉히 시간을 잡고 남는 시간을 시내에서 서성거리리라 생각하고 한시간이상 일찍 떠났는데 떠나자마자 걷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기어간데다가 약속장소에 와서도 두어번 돌며 주차장소를 간신히 찾고는 반시간이나 늦게 도착해 주차장에 나와 기다리던 김신홍 회장을 만났고 그의 인도로 동기들이 기다리던 방에 들어갔다.
졸업후 한번도 보지못했으나 카페를 통해 글과 사진들을 주고받아 친숙한 얼굴들을 실제로 대하는 감격을 또 경험했다. 김회장은 카페에서뿐 아니라 전화로도 말을 놓지 않고 존대를 고집해 다소 어려웠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따뜻하고 관대한 인상이었다. 정성껏 마련한 자리에 반시간이나 늦게 가서 미안해하는 나에게 여기선 반시간 늦는건 보통이라며 위로하고 나중에 식대도 회비를 걷지 않고 혼자서 부담했다.
김형국은 건강이 좋지 않아보이는데도 부인이 운전하고 나와 너무 고마웠다. 건강을 곧 되찾기를 바란다. 박철홍은 평통위원이라고하며 어려울때의 과거를 잊지 말자는 뜻의 물망초 뱃지를 하나씩 나눠줬다. 헤어질때는 남가주 함북 도민회장의 명함을 줬다. 지역에서 활동을 많이 하나보다. 이영규는 공부보다는 체육과 바둑에 심취하다가 2학년때 군대다녀왔다는 얘기를 씩씩하게 했다. 그리고는 철이나서 공부를 열심히 했나보다.
황소 조성호는 학교시절 기억은 별로 없는데 카페에서 수년전 만났을때 전화를 한번 했더니 대뜸 임마 점마 해서 금방 가까워졌었다. 제가 나보다 반년 먼저 태어났다고 형님노릇을 한번 톡톡이 하려고 꽤먼 Oxnard Beach에서 달려온 것이다. 나중에 보니 만날때 집사람에겐 하트모양의 돌맹이 두개를 줬다. 주려면 날주지 왜 마눌에게 주노. 고연눔.
여운조는 졸업후 공군에 같이 들어간 사이다. 나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훈련받을때 나와 같은 7구대에 있었단다. 모인 사람들중 나이로는 제일 위인듯한데 제일 어려보였다. 나이가 어쨌든 동기니까 군대에서 동기간에 말을 무조건 놔야했듯 지금도 서로 말을 놔야한다고 강조한다. 여운조와 같이 대한항공에 다녔던 다른 학교 나온 군대동기 얘기도 나눴다.
남자들은 학창시절 얘기에서 치아 임플랜트 얘기, 콜레스테롤과 당뇨 얘기등 건강문제로 화제를 옮겨갈때에 부인들은 집이 어디에 몇채가 있다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들을 나눴나보다. 집사람이 거기온 분들이 다들 거부인가보다고 말한다. 하긴 LA지역에 집 한채있어도 백만장자인데 여러채가 있으면 거부아닌가.
수년간 가상의 세계에서만 대하던 얼굴들을 실물로 대하게 자리를 마련해준 김신홍 회장과 교통지옥 속에 먼길을 달려온 동기들과 부인들께 감사한 말씀을 다시금 전한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고 사업 번창키를 바라며 남부 촌에서도 만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