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

옛제자

Young1Kim 2014. 4. 12. 08:02

집사람이 얼마전 전에 같은 교회를 다니던 분을 어디서 우연히 만나서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는데 엇그제 전화가 왔다고한다. 내가 자기 딸에게 전화해 달라고 부탁 하더라고했다.

 

그분 딸 S는 내가 예전에 이곳 연합장로교회에서 가르치던 11학년 반의 학생이었다. 중고등부 회장으로서 리더쉽이 있었고 부장이었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었다. 그런데 대학을 들어가며 갑자기 교회를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달려가 다시 교회로 끌고 나왔어야 했을것 같은데 그러질 않은것 같다. 아마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였으리라. 그후 나도 그교회를 떠나게되어 S와 멀어졌는데 수년전 나의 장로 동기생인 그의 부친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되어 장례장에서 한번 만났다. 그때는 S와 역시 나의 교회학교 제자였던 S의 한살아래 남동생을 자주 만나줘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다하게 만날 계기도 없었고 잃어버린 아버지 노릇을 대신 해준다는게 주제넘은 생각같아 그렇게 되질 않았다.

 

지금은 식구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잔소리를 하는데 교회 얘기만 꺼내면 나와 같이 지내던 추억을 떠올려서 내말은 들을것 같아 교회 다시 나가라고 한마디 해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생활의 대부분을 영어권 2세의 신앙지도에 힘썼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디트로이트 연합장로교회의 중고등부를 구성해 인도했었다. 아직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때라 시원치 못한 차를 샀었는데 운전을 처음 배웠을 때라 몇번 들어받아 발동을 걸면 연기가 증기 기관차 같이 났다. 한 여학생이 옆에 서있다가 "Mr. Kim, buy a new car!"하고 소리를 지르던 것이 생각난다. 아틀란타에 이사온 여러해 후 그교회엘 갈일이 있었는데 친교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젊은이 몇이 다가와 우릴 기억하냐고 하며 내가 저희를 가르쳤었다고했다.

 

아틀란타에 와서는 처음 맡은 반이 S의 반이었다. 여학생이 여나믄명, 남학생이 한명이었다. 집이 교회에서 멀지않아 성경공부 장소를 자주 집으로 옮겨 피자를 구어 먹이고 했었다.

 

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지도하던 세월을 그리워 한다는 말을 들으니 맘이 뭉클해졌다. 내가 가르친 애들은 다 내 앞에서 사라졌으나 아직도 나를 선생으로 기억하는 애가 하나라도 있다는데 감동 되었다. 전화를 했더니 반가워하며 집으로 오란다. 집사람과 찾아갔더니 미국인 남편과 잘생긴 10살, 12살의 아들들이 차에 까지 맨발로 나와 인사를 한다. 무슨 귀빈이나 죽었다 살아온 사람을 대하듯 정중히 대해 미안할 정도였다. 잠시 차를 나누고 앞으로는 또 30년을 기다서는 안된다고하며 나섰다. 다음주쯤 그집 식구들을 모두 불러 옛정을 다시 살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