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 1: 이번주 딸애가 봄방학이라서 엄마 가게를 봐준다해 어제 저녁에 에딘버로로 떠날 계획이었다. 비행기 자리가 낮에도 많이 비어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어쩐일인지 출발시간에 사람이 많이 몰려 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30년간 자주 standby 여행을 했으나 비행기 중에도 국제선 비행기를 타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아마 뉴욕지방의 일기 때문에 그방면 노선이 모두 취소된 것의 영향인듯하다.
이상한 일 2: 밤늦게 전화가 왔다. 무례하게 늦게 전화한 것을 달갑지 않게 받았더니 아버지 어머니 계시는 양로원의 남자 간호원이다. 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고했다. 곧 달려갔다. 어머니 말씀이 내가 외국여행중이니 전화할 필요 없다고 하셨다는데 고지식한 아프리카인이 사람이 있건 없건 제가 맡은 임무를 완수하려고 전화를 한 모양이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시는데 이미 의식은 없으신듯 했다. 점점 숨소리가 약해지고 손가락에 끼인 기계의 산소수치가 떨어지고 혈색이 점차 잃어지더니 두시간만에 운명하셨다.
뉴욕의 기상이 좋았더라면, 에딘버로 비행기가 만원이 되지 않았더라면, 만원일 것을 미리 알고 탑승 순위를 높였더라면 지금은 호수 저건너에서 관광을 즐기고 장례가 다 끝나고서야 돌아왔을 것이다. 그동안 여기 식구들은 통역겸 섭외담당 부재중에 결국은 장례를 치루긴했겠지만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형과 동생은 내가 없으려니하고 전화를 할 생각을 않고있었으니 고지식한 아프리카인 남자 간호원이 어머니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밤중에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더라면 임종을 놓쳤을 것이다.
외동딸인 동생은 어머니 곁에서 같이 애도하고 형은 교회사람들과 장례절차를 의론하는 중에 나는 사업절차를 교섭했다. 아침에 장의사 두어군데에 들려 제일 좋은 가격에 제일 좋은 곳으로 수속을 끝냈다. 두분의 장지와 부속 비용 일체는 12년 전에 미리 지불했었는데 우리 3남매 부부가 부모님과 같이 묻히기 위해 오늘 다시가서 양지바른 곳으로 바꾸며 6개를 더 구입했다. 관을 직접 사오면 비용이 좀 절약된다고해 내일아침 한군데 가서 실어오기로 예약을 했다.
장의사: Sandy Springs Chapel, 136 Mt. Vernon Hwy, Sandy Springs, Georgia
고별예배: 3월 19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영결예배: 3월 20일 화요일 오전 10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