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갈 때가 정해져 있는걸까. 어떤 사람이 비행기를 처음 타는지 안절부절 하더란다. 옆에탄 사람이 "사람은 갈때가 따로 있으니 비행기를 탔다고 먼저 갈까봐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했다고. 그사람이 대답하기를 "내가 갈때는 아니라도 조종사가 갈때가 되었다면 어떻하지요?" 했더란다. 나에게도
"그때 갈뻔했는데" 하는 아찔한 순간이 몇번 있었다.
공군시절 주말마다 서울에 왔다가 일요일 밤차로 대전으로 가는 생활을 4년을 했다. 대전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게 되는데 한번은 기차에서 자다가 일어나 철로를 건너 역사쪽 플랫폼으로 가고있었다.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고 하면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 누구나 철로를 건너다녔다. 그날은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나에게 뭐라고 크게들 소리를 지르는데 잠결에 무슨소린지 들리지 않아 그냥 천천히 건너 플랫폼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기차 한대가 왱하고 지나가는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1초만 늦게 플랫폼으로 기어올라갔으면 나는 거기서 짧은 인생을 마칠뻔했다. 마치 진주문앞에 서계시던 베드로 사도께서 "넌 아직 올때가 되지 않았어." 하시는듯 했다.
미국에 처음 와 차가 없을때 일을하던 가게의 밴을 가끔 집으로 몰고 왔다. 그댁에서는 차인심이 후해 아무때나 필요하면 가게밴을 쓰도록 해줬다. 하루는 집사람과 차를 보러 다니다가 집으로 가는 고속도록로 들어섰다. 출구가 가까워져 트럭 앞으로 들어섰면서 오른쪽으로 돌게 됐는데 그때야 앞차들이 다 밀려서있는것을 봤다. 간신히 급정거를 했는데 뒤에서 달려오는 트럭이 설수 있을것같지 않았다. 밴은 뒷자리도 없는 짐차여서 트럭이 받으면 나와 집사람은 그냥 오징어같이 납작히 찌그러질것 같았다. 그순간 트럭이 내오른쪽의 curb둔덕으로 올라서며 계속달려 내차를 지나서야 섰다. 트럭운전수의 순간적 기지가 아니었으면 우린 그때 갔다. 나가서 운전수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했어야하는데 너무 혼줄이 나서 그냥 내빼고 말았다. 이때도 베드로사도가 "아직도 아니다." 하셨을까.
아틀란타에 살땐데 정섭이형이 뉴욕으로 이사를 간후에 한번 내려와 헌차를 한대 샀다. 내가 그차를 뉴욕까지 몰아드리겠다고 자원을 했다. 기왕 차로 가는것 아버지를 모시고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아직 동이 트기전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렸는데 마침 그곳 경찰이 여러명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차는 번호판이 만기가됐는데 아예 뉴욕판으로 붙이려고 만기된 판 그대로 몰고가던 참이었다. 경찰을 식당에서 만나니 뜨끔해 허둥지둥 식사를 마치고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속력을 냈는데 고속도로 오른쪽 길로 오던 트럭이 속력을 줄여 넣어주지 않는것이었다. 진입을 못하고 앞에있는 낭떨어지에 거의 떨어질뻔하다가 길변에 섰다. 아버지도 혼이 나셨는지 "네가 교회봉사를 열심히 해서 우리가 살았다." 하셨다. 베드로 사도가 진주문 앞에서 한번더 씽끗 웃으셨을것 같다.
아직은 갈때가 되질 않았었나보다. 오늘이 갈때라도 갈때가 아주 먼것같이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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