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이야기

한 평범한 이민사 6 마지막회

Young1Kim 2010. 5. 22. 20:27

공장에서는 저녁일을 했으므로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일어나곤 했었는데 10월도 다간 어느 이른 아침 느닷없는 전화 소리에 단잠을 깼다. 델타 항공사의 S라고 자신을 밝히며 오늘중에 공항으로 나올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서야 반년전에 구직 편지를 돌린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수없는 인터뷰 후에 툇자를 맞은 뒤라서 전혀 기대를 갖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아침잠과 기름값만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달려갔었고 며칠 공항의 델타 항공사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와서 비행기표를 찾아가지고 본사로 인터뷰를 가라는 전화 지시를 받았고 다음날 나는 아틀란타행 트라이스타기 1등석에 앉아 있었다.

말이 항공사지 처음에는 파트타임 임시직으로 야간에 6시간씩 비행기 내부 청소를 했다. 4개월뒤 풀타임이 되자 소위 보조직원이라는 직분으로 비행기의 쓰레기를 치우고 변소물을 가는 일을 했다. 냄새가 나는 일이긴 했지만 누구 간섭을 받지 않고 혼자서 차를 몰고 다니며 하는 일이라 마음은 편했다. 4개월이 지나서는 술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행기에 위스키, , 보드카등 술병이 쓰인 만큼 채워 넣어 주는 일이었는데 그전 일에 비하면 깨끗하고 힘이 훨씬 덜들었다.

델타에서 일을 시작한지 1년쯤된 지난 11 직급 명칭에서 보조자가 빠진 직원으로 진급이 되었다. 동시에 월급이 오르고 램프 (Ramp> 나왔는데 비행기를 게이트에 파킹 시키고 짐을 내리고, 싣고, 다시 정확하고 안전하게 떠나 보내는 것이 나의 임무다.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티켓 카운터로 자격을 얻는다.

미국에 와서 대개 겪는 언어의 어려움을 나는 누구 보다도 호되게 겪었다.

비행기의 소응 때문에 귀마개를 낀채로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기란 생상했던 보다도 어려웠는데다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본부의 지시를 못알아 들을 때는 정말 진땀이 났다. 무전기란 전화와 달라서 내가 하는 말을 시스템에서 듣게되니 더욱 주눅이 들었었다. 본부에서 , 아직 거기 있는가?”하고 다구칠 때면 무전기를 내팽개치고 가까운 쥐구멍으로나 들어가 버리고 싶었던 것이 두번이 아니다. 지금은 일의 내용을 알게 되었고 무전기로 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까지 알게 되어서 예전만큼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서열이 높아져 가면서 아래 서열의 직원들을 교육시키거나 리더로서 일을 시킬 때에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혼자 생각한다. 결국 만족할 만한 상태는 못됮만 이제 미국 생활 3년에 무엇을 더바라랴 생각하고 자위하고 있다.

현재의 나는 자기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는 많지 않은 바보들 중에 하나이다. 한국에 두고왔던 아이는 지난 9월에 어머니가 데리고 오셔서 오랜간 만에 사람 사는것같이 살고있다. 어머니와 아이에게 그동안 자식과 부모딘 도리를 지키지 못한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비록 공짜지만 1등석에 모시고 섭섭잖게 구경도 시켜드렸다. 지금은 그동안의 모인 돈으로 작은 집을 장만하기 위하여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같이 행복하며 행복이 우리사는 동안 계속될 있도록 노력하고있다.

한대의 비행기가 착륙하며 역류시키는 제트엔진의 소음이 상념을 깨뜨린다.

뒷날개의 푸른 삼각형 우리 비행기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게이트위의 신호대로 올라간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돌아 게이트로 들어오고, 나는 조종사에게 수신호를 보내어 비행기가 제자리에 서도록한다. 조종사가 웃으며 보내는 손짓 인사에 답을 하며 허리에 무전기를 뽑아들고 본부를 부른다. “KQJ775 – 여기는 88Q 348 게이트에 들어왔음.” 응답이 들려온다. “348 게이트에 댕큐 88Q!” 신호대에서 뛰어 내려오며 소리친다. “, , 너희들은 뒤의 3, 4 화물칸으로 가라. 제리는 비행기에 음료수를 채우고, 마이크는 앞의 1,2 화물칸에서 나와 같이 일한다.”

생기와 젊음이 약동하는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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