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이야기

한 평범한 이민사 5

Young1Kim 2010. 5. 22. 20:23

그러나, 내가 어렸들때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 들을 생각했다. 어버지는 건축업을 하셨는데 공사장에서는 마루다라고 불리우는 가늘고 통나무들이 많이 쓰였다. 마루다를 내가 만지면 무수한 작은 가시들이 손바닥에 박혔으나 늘상 공사장 일을 해온 노동자들은 피부가 굳어져서 가시가 피부로 파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쇳가루를 바늘로 파내며 피부도 언젠가는 이것에 적응 되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그것보다는 조금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쇳가루가 코를 통하여 폐로 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외과 레지던트를 하는 친구가 마스크를 한상자 갖다 주었는데 두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일을 휴식시간에 뒤집어보니 간단히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 쇳가루가 수북했다. 이것들이 폐에 박힌다면 그것은 바늘로도 파낼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슴을 열어젖히고 확대경을 대고 바늘로 폐의 쇳가루를 파내는 의사들의 모습이 머리속에 떠오르자 미칠 같았다. 젊어 고생은 돈주고 못산다지만 몸은 버리지 말아야한다. 평생 일도 아닌데 폐를 버리거나 손가락을 잘리거나 한다면 후일에 어떻게 웃으며 고생담을 이야기 있겠는가?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그만두면 갈데라곤 2 20 짜리 주유소 밖에 없었고 다시는 이만한 직장을 얻을 엄두조차 못내고 언제까지나 쪼들리며 짐승같이 밖에 없을 것이었다. 거기다 그동안 나를 벌어 먹이느라고 심신이 고되었던 아낵, 오히려 내가 의기소침해질까 불평 한마디는 커녕 간간히 없는 돈에 맥주까지 사다 바치던 아내가, 내가 공장에 취직을 하자 오랜만에 환하게 웃던 얼굴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났다.

우리는 한국서도 그리 풍족하게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그때 까지는 미국에서 궁하게 살면서도 한번도 이민을 후회해본 일이 없었다. 내가 대학시절 한때 건축업으로 돈을 버셨던 아버지가 두번 사업에 실패를 보신 후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근근히 졸업을 하고 군대를 갔다오고, 취직을 하고, 결혼말이 나오기 시작했을때는 양가가 모두 빈털털이여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들 있었다. 나는 내힘으로 내분수에 맞게 결혼할 것을 결심하고 어느 한달 봉급으로 번지와 시계를 장만하고 담배 값도 없어서 직장 동료들 담배를 한달간 얻어 피운후 그다음 월급으로 옷감을 장만하고는 그녀에게 다음 달에는 결혼할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예상했던 것과 같이 펼쩍뛰며 자기 친구들 만큼은 혼수감을 없어도 최소한은 해가야 할텐데 그러러면 가을 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었다.

많은 물건을 가지고 시집을 가는 여자는 자기 몸과 마음을 온전히 신랑에게 바칠 생각이나 자신이 없기 때문에 물건으로 때우려는 것이다. 네가 만일 혼수감으로 네몸과 마음을 온전히 모두 가지고 나에게 온다면 그것은 금과 은보다 귀한 것이고 우리가 죽는날 까지 닳아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니 너에게 그럴 자신이 있는가?”

다음 우리는 결혼할 수가 있었고 미국에 까지 작지만 줄곧 행복이 넘치는 25만원짜리 전세방에서 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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