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왔다. 직장하나 구하지 못하고 이민 1주년을 맞은 것이다. GM자동차 회사에 인터뷰를 갔다가 또다시 미역국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기름을 넣으러 들어갔던 셀프 서비스 주유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은 쉬운 대신 미국서는 쉬운 일은 보수가 적다는 것을 절감했다. 시간당 2불 20전 – 반년전 어디간들 3불이야 못받겠는가고 가발가게를 뛰쳐 나온 것을 생각하면 우습지도 않았지만 당장 한푼이 아쉬웠다. 주로 저녁에 나 혼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조용해서 좋았다. 자정이 되면 수퍼바이저라고 불리우는 18살난 이태리계 소년이 돈을 거둬서 은행에 입금을 시키려고 들리곤 했다. 그는 킴이란 16세난 소녀와 이미 결혼을 한 사이였는데 둘다 같은 주인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나를 몹시 따르고 부부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의논을 해오곤 했었다.
이 어린 부부의 일하는 태도는 너무도 성실하여 일면 대견한 생각도 들고 일면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같으면 어른들에게나 의지하고 재롱이나 떨 나이에 자기들의 장래를 힘껏 개척해 나가는 가장의 태도가 대견했고, 벌써부터 개스값, 자동차값 집값등 소위 payment걱정을 해야하는 것이 안됐었다.
그들과의 인연은 두달 뒤 같은 교회에 다니던 Y씨가 기계공장에 소개를 해줌으로서 끝이 났다. 공장장이 인터뷰 끝에 신체감사표를 건네주니 기쁘기도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대개 인터뷰 후에 너를 꼭 쓰고 싶으나 당장은 자리가 없으니 집에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곧 연락해 주마 하는 말을 믿고 기다리면 촌놈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온건한 거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뷰후에 신체검사표를 주어야만 취직이 확정이 되는 것이다.
기쁨과 허무감이라고 했는데 기쁨이란 물론 지상 최대의 목적이었던 시간당 5불짜리 직장을 구했다는 기쁨이었고, 허무감이란 지금까지는 먹고 살만한 직장을 구한다는 희망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런 직장을 구했음으로 그 희망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아리로니칼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제부터 언제까지나 공돌이 노릇을 해야할런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허무했다.
그 허무감은 다음날 더욱 구체화 되었다. 공장에서 하는 일이란 주로 조그만 자동차 부품들을 드릴에 대고 깎는 것이었는데 손가락 마디들이 끊어지듯 아픈 것은 고사하고 순식간에 온몸이 쇳가루와 기름 투성이가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쇳가루들은 물로 씻어도 때와 같이 벗어지지 않고 하나 하나가 모두 작은 바늘 같이 피부로 파고 들었다. 밤에 퇴근하여 불밑에 앉아 바늘로 파내어도 잘 나오지 않아서 공연히 피부만 이곳저곳 헤집어 놓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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