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원교회 소식지 기고문

23.03 봉원교회의 옛이야기

Young1Kim 2024. 6. 14. 04:55

이대부중에 입학 한1958년 첫 여름방학 때 신당동에서 신촌으로 이사 와서 첫 주일에 신성 교회에 나갔다. 걸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장로교회였다. 천막지붕에 흙벽돌 벽에 맨 흙바닥의 교회는 처음 간 곳 같이 낯설지 않고 아늑하고 다정했다. 젊은 이원태 전도사님은 부임 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내 평생 신앙의 지도자로 존경하는 이 목사님을 처음 대면하는 날이었다.

 

주일이면 산동네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이 교회에 몰려 왔다. 부모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서도 애들이 교회에 가는건 좋게 여겼다. 아마 교회에서 나쁜건 가르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였을께다. 실제로 어른들이 집앞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아이들을 보살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적도 있다.

 

전쟁이 끝난지 몇 년 되지 않아 모든게 귀할 때였다. 부활절과 성탄절 같은 교회 명절에는 공책이나 연필을 나눠줬기 때문에 그런 날에는 아이들이 더욱 많이 왔다.

 

그러나 그 아이들을 지도할 어른은 그리 많지 않아 학생들도 교사로 나섰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 주일학교 보조교사가 되었다. 기도시간에 눈 뜨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꿀밤을 주는 것이 주 임무였다. 선생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하니 눈 뜨고 까불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꿀밤을 먹고 깜짝 놀라 당황해 했던 얼굴들이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그렇게 순진했다. 몇살 많지 않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믿고 따랐던 그 아이들이 신앙교육을 바탕으로 민주사회의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하고 활약하고 지금은 은퇴를 했으리라.

 

고교 시절 부터는 주일학교 교사로 애들을 가르쳤다. 주일학교 예비종을 치는 것으로 주일 아침을 시작하고 주일학교 지도, 학생부 예배, 찬양대 연습, 청년부 친목, 저녁 예배 등으로 주일은 언제나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바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동네를 돌며 교인 집들로 캐롤 팀을 인도하셨던 내 고모 할머니 김영순 전도사님, 추운 밤에 목청을 맞추고 정성껏 성탄 찬송을 부르던 성가대, 꽁꽁 얼은 손을 내 주머니에 넣고 따라 다니던 내 주일학교 반 김나정 한혜순, 모든 집을 다 돈 후 따뜻한 교회에 모여 교인들이 준 과자와 캔디를 나누는 친교. 이 모든게 봉원 교회 초기의 정다운 추억이다.

 

믿음의 여성 동지들, 박태경, 태연 자매, 노은숙 선생, 서성란 양, 그동안 자라서 동역자가 된 한혜순, 열성적 기도로 마음을 후련하게 한 박상돈, 피아노를 힘 있게 치던 이광민, 패기 넘치는 지휘자 김신길, 나의 군입대 전 몇주간 나를 데리고 동네를 같이 뛰어 고된 공군 간부 후보생 4개월 훈련을 수월히 받게 준비 해 준 백범석, 거의 졸업 하게 된 대학을 중단 하고 신학교에 신입생으로 들어간 김광규 형, 교회의 굳은 일을 도맡아 했던 문수길 형, 연세대에 입학하며 우리 팀의 일원이 된 김서년, 교회청년들의 사역과 행사와 친목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교회 어른들.

 

모두가 사심없는 순수한 마음이었고 그 순수한 마음은 이원태 목사님으로부터 전해진 것이었다. 목사님은 공정하고 의로운 영적 지도자시다. 그 헌신적 열성적 사역에 우리는 모두 큰 보상을 받았다. 곧 마음 속에 충만한 기쁨이다. 이 기쁨은 잠시도 나를 떠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