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속했던 단체나 기관에 깊은 애정을 갖는다. 다녔던 학교와 일했던 직장이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그때의 사람들과 아직도 교류를 한다. 남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걸 근래에야 알았다. 그러니 중 1 시절 부터 18년 후 미국에 올 때 까지 영과 육의 성장을 지켜준 봉원 교회에 남다른 애정을 느끼는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평범한 교회의 인연 이상으로 애정을 갖게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어느날 목사님이 사무실에 부르셨다. “김선생, 취직도 했으니 이젠 장가를 가야할 것 아니오?” 나는 “결혼은 생각치 못했어요.”하고 대답했다. 학교를 일찍 다녀 대학을 졸업하고 4년 반의 공군 장교 복무를 마치고 직장에 취직한지 두해 됐는데 아직 20대였다. 그러나 궁금하긴 했다. “그런데 누굴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혜순이가 곧 졸업을 하는데…” 내심 깜짝 놀랐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첫 주일학교 반사를 했던 5 학년 반의 아이였다. 교회에서 같이 자라며 이제는 믿음의 파트너가 되어 같이 주일학교와 학생회 봉사를 하고 같이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이구 목사님, 예전 주일학교 반 아이를 데리고 오겠다면 동네가 다 웃을꺼야요.”
목사님은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다 “김선생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데리고 갈 것이 아니오.” 맞는 말씀이었다. 사실은 내가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던 말을 목사님이 대신 해 주신 것이었다.
칼을 뺐으면 단번에 휘둘러야한다. 몇 달 후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70이 넘어 세 손녀의 할머니가 되었으나 내눈에는 아직도 5학년의 앳된 소녀로 보인다. 우리가 같이 사는 하루 하루가 꿈 만 같고 같은 지붕 아래에서 지내는 것이 구름 위를 걷는 것 만 같다.
후에 불러 와 멀지 않은 곳에서 사는 여동생과 처남, 처제와 동서도 봉원 가족이어서 봉원 교회는 모두에게 천당 다음으로 흠모하는 곳이고 교회와 목사님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들 숙연한 표정이 된다. 타지로 떠난 교인들이 이토록 흠모 하는 교회가 세상에 또 있을까? 65년전 신성 교회로 향해 간 걸음을 주님이 인도 하신 것이었다고 믿고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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