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원교회 소식지 기고문

24.10 작은 성취 반세기

Young1Kim 2024. 9. 23. 09:50

우리 집은 장로교회와 깊은 인연을 갖어왔다. 아버지는 일정 시대 일본의 관서공대 건축과에서 교육 받고 미국인 보리스 William Merrell Vories 선교사의 일본 오미 하찌만 설계 사무실에서 훈련 받은 건축 전문가였다. 해방 직전 귀국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건축 전문가로 전국의 교회, 고아원, 양로원, 신학교, 대학교 등의 신축 보수 일을 하다가 전쟁 후에 자신의 건축 회사를 열었다.

 

전쟁 통에 나라가 폐허가 되었으니 너도 나도 건물을 다시 지어야 때였다. 아버지 사무실에 건축을 부탁하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아버지는 교회와 학교를, 그중에서도 장로교 계통을 우선으로 택했다. 상업적 건물이나 개인의 주택은 아주 가까운 사람이 부탁하는게 아니면 손을 대질 못했다. 아버지가 설계, 시공하신 건물들은 연동교회, 새문안 교회, 장로교 총회 신학교 본관, 연세대 경영대학원, 서울 여대 본관, 수십개의 교회와 학교이다.

 

나보다 일년 학년의 형이 장충 국민학교를 졸업 하게 되자 어머니의 이화여전 동창인 이대부중 차재순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보낼 것을 권하였고 다음해엔 나도 학교에 들어가 형과 같이 신당동에서 동대문 까지 걸어가 이화여대 버스를 타고 신촌 까지 통학을 했다.

 

내가 중학교에서 여름방학을 맞았을 아버지는 아들의 통학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봉원사의 화장장 폐허 일대의 땅을 사서 화장장 옆에는 건축 자재를 쌓아 창고를 세우고 그옆 땅은 주차장으로 만들고 시냇물 건너편의 기슭에 서양식 집을 지어 이사를 갔다. 그래서 나는 신성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훌륭한 건축가였으나 능력 있는 경영인이나 세일즈맨은 되었다. 일을 부탁하는 사람들을 선별해 일을 주다가 세상이 점차 바뀌어 일을 찾아 다녀야하는 때가 되자 아버지의 사업은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

 

아직 대학에 다닐때 집에서 나가게 되었다. 양동이와 고추장 단지 등을 개씩 들고 그리 멀지 않은 셋방으로 옮길 도와주려는 동네 사람들도 교회의 친구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망해서 쫒겨나는 사람을 아는 척하면 재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을까? 그러나 부정직하거나 불법의 일을 것이 아니고 정직한 사업에 실패 것은 창피할 일은 아니었다. 있었을 잘난 적이 없었으니 없게 됐다고 부끄러워 일도 없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 하고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두집이 애들을 결혼 시킬 형편이 안됐었다. 그걸 오히려 기회로 삼아 나는 속결전을 펼쳤다. 두달 봉급을 모아서 검소하지만 예쁜 반지와 옷감 얼마를 준비하고는 다음 달엔 결혼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준비가 안됐고 가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펄쩍 뛰었다. 그즈음 해서 그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시집을 가기 시작했는데 모두가 호화로운 결혼이었다.

 

나는 많은 물건을 가지고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물건으로 때우려는 것이야. 우리가 만일 혼수감으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서로에게 온다면 그것은 금과 은보다 귀한 것이고 우리가 죽는날 까지 빛을 잃지도 않을 것이야.” 다음 교회에서 이원태 목사님의 축복으로 결혼을 했다.

 

결혼 며칠 전에 믿을 없으리만치 깨끗하고 방이 나왔다. 부엌과 세면대는 옆의 언덕길과 사이를 널판으로 막아 만들었고 거기서 가로 세로 1미터 정도의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면 방이었다. 누구고 방에 들어가려면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기어 들어가야했다. 그러나 일단 들어가면 행복이 넘치는 작은 방을 발견했다.

 

나는 검소한 결혼을 하면서 산동네에 사는 가난한 청년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에는 어렸을 신성 주일 학교에서 나의 지도를 받은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이 동네에서 제일 있는 집에서 제일 없는 집으로 전락하는 것도 왔으리라. 그들에게 가난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고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날이 것이며 결혼도 돈으로 하는게 아니라 두사람의 사랑이면 족하다는 본을 보이고 싶었다. 우리는 없게 시작했으니 우리 힘으로 보다 있게 되는게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50년간 우리는 작은 성취들을 스스로 축하하며 살아왔다. 그동안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주신 주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가져온 혼수감이 잠시도 빛을 잃지 않게 축복해 주셨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