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하며 실내에서 일하려면 티켓 카운터로 올라 가는 길 밖에 없었다. 애당초 취직할때는 기회가 되면 윗층 티켓 카운터로 올라 갈 희망이었는데 아래 램프에서는 일할 비행기가 없을 때는 휴게실에서 TV를 보거나 하며 놀면 되는데 윗층의 카운터에서는 30분 점심시간과 두번의 15분 휴식시간 외에는 계속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카운터로 올라갈 마음이 들지 않았었다. 사실 공항서 일하면서 체스, 백개몬, 탁구를 배웠다. 그러나 겨울이 밖에서 일하기에는 너무 추우니 내년 겨울이 되기 전에 그리 올라가리라 생각했다.
그때는 회사안에 일자리가 생기면 외부에서 사람을 찾기 전에 내부에서 먼저 뽑았다. 휴게실 게시판에는 항상 각부서의 구인 공고가 나붙어있었다. 1982년은 항공사에서 손으로 하던 일들을 한창 전산화 하던 때라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뽑는 공고가 계속 떴다. 그때는 컴퓨터가 지금같이 보편화 되지못했고 한국에는 컴퓨터가 국방부와 서강대 두곳 밖에는 없다고들 했었다.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때여서 나도 은근히 관심이 있었다. 델타에 취직하기전 신문광고를보고 Control Data의 프로그래머 교육과정 소개 시간에 갔었는데 10개월 교육을 $3950에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영주권자는 $50만 내면 나머지 금액은 융자를 받을수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비싸다고 생각할수 없는 액수지만 오천불만 있으면 가발가게 하나 낼수있다던 그때엔 상당한 액수였고 근 1년을 어디서 밤일을 하며 학교에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포기한 적이 있었다.
프로그래머 모집 공고가 또 뜬 어느날 아틀란타 본사의 전산부에 전화를 해 전산을 전공한 사람만 프로그래머 자리에 지원할수 있냐고 물었다. 전화를 받은 여자가 대답하기를 자기는 비서라서 잘 모르나 전공은 필요없는 것 같고 적성검사등 시험을 치고 합격하면 회사에서 교육을 시킨다고했다.
실마리 만한 희망으로 우선 컴퓨터 기본논리에 대한 책을 하나 사서 읽었다. 글 보다 그림이 많은 그야말로 초보자를 위한 책이었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교통신호등이 빨간 불에서 파란불로 바뀌는걸 컴퓨터로 조정하는데 빨간 불이 된후에 차 10대가 서게되면 파란불로 바꾼다. 한편 빨간불이 된후에 2분이 지났으면 10대가 서지 않았어도 파란불로 바꾼다. 이걸 if니 then이니 else니 해서 논리로 풀었다. 나는 산수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이런 논리는 재미있을 것 같았고 load planner의 경험을 통해 미국인들과의 경쟁에서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시내 웨인 주립대학 앞의 서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적성검사 연습 책을 샀다. 1, 3, 5, 7 다음에는 무슨 숫자가 와야하는가? 쉬운 문제에서부터 점차 어려워지는 문제들이었다. 또 논리적 문제 즉 어떤 일을 A가 하는데 3시간이 걸리고 B가 하는데 2시간이 걸린다면 둘이 같이 하면 몇시간이 걸리겠는가? A기차역과 B기차역이 100마일 떨어져 있는데 A역에서 기차가 시속 30마일로 떠나고 B역에서 기차가 50마일로 떠난다면 두 기차가 몇마일 지점에서 만날 것인가? 알듯말듯한 문제들이어서 책 첫부분에있는 연습문제를 시간을 재어가며 해보니 반도 못맞추었다. 매일밤 1시반에 퇴근해 두어시간씩 수주간 연습을 하니 나중에는 거의다 맞추게됐다. 그동안 본사에 시험치러 오라는 통보를 몸이 안좋아서, 애가 아파서 하며 몇번 연기했다.
8월 초에 본사에 시험을 치러 갔다. 인사과에 가서 15분, 20분 25분의 적성검사를 받았다. 적성검사라는게 원래 시간이 급해 채 못 끝내고 일어나는 것이 정상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러주 연습한 덕에 다 끝내고 다시한번 볼 시간도 있었다. 한시험에 하나나 둘쯤 틀릴까 말까 했다. 시험관은 중년의 흑인 신사였다. 내가 시험을 exceptionally well하게 쳤다고 하며 "I hope you will get this job, young man!"하고 격려를 하는 음성이 31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리고는 택시에 태워 20분 정도 떨어진 전산부에 보냈다. 매니저 Marty Hancock은 디트로이트에서 너의 평가를 아주 높게 했고 오늘 시험성적도 뛰어난데 네 영어실력이 미덥지 않다며 미국에 온지 얼마나 됐냐고했다. 나는 미국에 온지는 6년됐으나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고 공군에서 영어 교관이어서 미국오기 전에도 영어는 부족하지 않았다고 했다. 핸칵은 그건 이해하겠으나 프로그래머 교육은 워낙 어려워 대학나온 미국인들이 많이 떨어진다고 했다. 나는 참을성을 약간 잃고 나는 load planner로 지상과 조종사에게 무선 통신을 많이 할 정도로 영어에 문제가 없는데 Station Manager Woody Ott에게 확인해 보라고했다. 핸칵은 아니 널 의심하는게 아니라 내가 뽑았는데 쫒겨난 사람들이 있어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기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녁에는 아틀란타에 살고있던 친구 정호와 밤새 한잔술에 옛이야기를 나눴다. 다음날에는 심리학자 Dr. Janus 사무실에 갔다. 프로그래머로서의 사고방식을 지녔는지, 하루종일 앉아서 일을 할만한지 회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인지 심리평가를 받았고 영어실력이 합당한지 어휘와 문장 시험을 쳤다. 그외에도 여러 시험을 치고 인터뷰를 하루종일 했다. 간밤의 술이 채 깨지 않아 힘든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디트로이트에 돌아오니 오트 공항지점장이 불러 프로그래머 합격을 축하한다고 했다. 디트로이트 공항에 자기가 있던 수십년간 내가 두번째로 합격했다고했다. 그리고 오는 월요일에 과정이 시작되니 본사로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공부한다고 몇주 미룬 덕분에 급히 전근을 가게됐다.
1982년 델타 프로그래밍 클래스 수료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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