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전 장모님이 암 선고를 받으셨다. 낼모레 여든을 바라보시는 노인 답지 않게 건강하고 활동적이시던 장모님도 암이 비켜가지는 않은 것이다. 선고를 받으신 본인도 심경이 착잡하셨겠지만 두달간 매일 치료를 받으시도록 모시고 다닐 일도 막막했다. 여성에 관계된 암이라 아무래도 집사람이 주로 모시고 다니며 간호해야 할텐데 직장을 다닌다면 휴가라도 받지만 자영 사업을 하는 형편에 섯불리 가게 문을 닫기도 그렇고..
그러나 이곳에서 오래 살며 보니 부부가 열심히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가게를 나가 휴가도 없이 열심히 일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 같이 살던 분들이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가게에서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도 남은 가족들은 그럭 저럭 생활을 계속 하는 것을 보아왔다. “두달 후가 세상 끝날이 되지는 않을꺼야. 어떻게 되겠지,” 나는 생각했다.
미국에서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 우리들은 한국에 있는 분들과는 다른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 언어 문제로 항상 곁에 있으며 통역을 해 드려야 하는 문제이고 또 혼자 거동을 하실 수 있어도 버스, 전철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비현실적이어서 항상 차로 모시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집사람이 집에서 그리 가깝지 않은 병원과 의사들을 선택한 까닭에 (집에서 가까운 병원과 의사들은 미덥지 않다나) 출퇴근에 꽤 시간이 걸렸다. 약물 치료와 방사선 치료와 또 환부에 집중적으로 방사선 치료를 하는 장소와 의사가 각기 달라 세군데를 허둥지둥 모시고 다녔다. 약속된 시간에 가서 즉시 치료를 받고 다음 장소로 가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여러시간을 기다린 후에 차례가 되기도 했다. 처음 몇주는 환자가 약에 못견뎌 맥을 못추시기 때문에 하루 종일을 기다린 후에 그냥 오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차에서 시달리시는 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온 식구가 동원돼 모시고 다니며 정성껏 간호한 보람을 있어서 암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보고를 들었다. 얼마전에는 한국에서 막내 처제가 와서 간호와 살림을 도와 우리들에게 큰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노인들이 덜 연로하셨을 때는 이집 저집 자녀들의 집에서 애들을 키워 주셨지만 연로하시고 애들은 다 커서 노인들이 더이상 필요 없게 되면 부모님들을 보살펴 드리는 것은 언제나 우리부부 차례이다. 나는 이것을재수가 없다거나 불공평하다고 생각치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을 나의 신앙관에 비추어 생각해본다.
주께서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것은 나로 인해 이 세상이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나로 인해 고통을 좀 덜 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니 주께 순종을 한다면 남이라도 달려가 도울텐데 하물며 부모님 도와 드리는 것을 불평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내가 있어 부모님께서 고통을 덜 받으시도록 날 축복해 주심을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주실 축복이 아니라 이미 주신 축복이다.
뭐 장모님께 응당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드리고 (사실은 집사람이 해 드리는 것을 옆에서 봤을 뿐인데) 거창하게 세상과 축복등 신앙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말이 나온김에 몇가지 느낀바를 나열한다.
1. 과거에도 신병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댁에 빈손으로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그댁이 경제적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이해하고 더욱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다. 매일은 아니라도 몇번은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을 자원하고 남편이 환자라면 잔디를 깎는다던지 하는 일을 도와야겠다.
2. 내가 잘나 병에 걸리지 않고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것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나에게도 어려움이 닥쳐올 것을 생각하고 그때 식구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평소에 준비한다. 주위에서 부인에게 운전도 가르쳐주지 않고 죽은 사람도 보아왔다. 미뤄왔던 유서를 작성해 나만 알고있는 지식을 소상히 기록한다. 거기에는 은행 online 이름과 비밀번호들, 생명과 사고 보험 등을 claim 하는 방법등이 포함된다. 아이들에게 집 안팍의 해야할 일을 설명하고 유서에 기록한다. Sprinkler shutoff switch 의 위치, lawn mower, tractor, 그리고 새 trimmer에는 gas와 oil을 따로 넣고 헌 trimmer에는 gas와 oil을 32:1의 비율로 섞어 넣을 것 등등.
3. 식구들에게 마음 상할 일을 주지 않는다. 과거에 집사람과 애들에게 화내고 소리지른 일을 돌이켜 보면 다 필요 없는 일이었다. 상대방이 완전치 않은 것에 실망하고 화를 내는 것 보다는 나나 그나 완전치 못한 것을 인식하고 서로 사랑으로 감싸주고 살아야겠다.
4. 아직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들과 같이 있는 얼마 안되는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할일 다하고 시간이 남으면 찾아가 뵐 것이 아니라 먼저 찾아 뵙고 시간이 남으면 다른 할일을 한다.
장모님은 지난 수요일 치료를 잘 끝내시고 오래전 신청했던 노인 아파트가 자리가 나서 오늘 이사 나가셨다. 앞으로 한 두주에 한번씩 의사에게 가서 보이셔야 할 것이고 암이 또 자란다면 또 몇주씩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이다. 그때 일은 그때가서 염려할 것이고 오늘은 지금까지 주께서 같이 하신 것을 감사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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