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수 말대로 응수와 나는 학교를 다 마치고 군대를 갔었기에 광남이 형과는 꼬박 4년을 같이 학교에 다녔다. 우리는 모두 형을 "광남이 형"이라고 불렀다. 우리중에 광남이 형은 제일 연상, 나는 제일 연하였으니 맏형과 막내동생이 같이 공부를 한 셈이다. 형은 여섯살 어린 17살 애에게 절대로 "영원이"라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그때나 칠순이 된 지금이나 "김영원씨"라고 존중을 해 불렀다. 그래도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고 친밀히 대해주었다. 광남이 형이 철없는 나에게 의지가 많이 되었고 형 덕분에 대학생활의 기억이 더욱 소중한 것으로 남게됐다.
영문과 사십여명중 우리 남자는 너덧명뿐이어서 항상 뒷자리 구석, 그것도 문 가까이에 숨듯이 앉았고 탄압받는 소수로 동고동락하는 사이였다. 우리는 모두 숫기가 없기도 했고 미국인 교수들에게 영어로 거침없이 질문을 하는 여학생들이 우러러보여 감히 말을 걸어 보지도 못했다. 한번은 각 교수가 마치 우리가 자기 강의 만을 듣는 듯 소설책 몇 장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인정사정없이 숙제를 퍼부어 도저히 감당할수가 없는 형편이 되어 비상회의를 열고 읽었을만한 여학생에게서 내용을 듣고 적당히 숙제를 쓰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누가 감히 여학생들에게 그런 터무니 없는 부탁을 할수 있겠는가. 결국 여학생들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광남이 형이 십자가를 메기로 자원을 하고 여학생 한명을 데리고 왔다. 그여학생은 책의 내용을 친절히 설명하는 중에 "그여자가 그남자를 개X으로 여겨서요" 라고 말했다. 우리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있다가 여학생이 떠나간 다음에 폭소를 터뜨렸다. 아마 남학생들에게 은혜를 베푸는김에 친절하게 남자들의 언어를 쓰려는 선한 의도였겠는데 순진한 여학생이 차마 남자들이 개의 생식기를 의미하는 천한 언어를 쓴다고는 상상조차 못하고 어미개가 강아지에게 물리는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하여간 덕분에 나는 숙제에 좋은 점수를 받았다. 광남이형 덕분에 우리는 숙제의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고 그여학생은 고마운 기억으로 남게됐다. 그 여학생은 큰 성공을 하고 잘 살고있다는 소식을 가끔 듣는다.
졸업을 하고 내가 군대에 아직 있을때 형이 결혼해서 미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76년에 미국엘 왔는데 약 10년후에 형을 찾을수 있었다. 지금은 서른 중반이된 둘째가 다섯살인가 됐을때 그러니까 30여년 전에 둘째를 데리고 뉴욕주 북부 뉴버그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던 형을 찾아갔다. 형은 뉴욕 공항까지 내려와 우리를 뉴버그에 데리고 갔다. 오래간만에 참 반갑게 만나 밤늦도록 지나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호텔에서 먹고 자고 다음날 다시 뉴욕 공항까지 데려다줬다.
호텔에서 내려다 보이던 스튜아트 비행장이 곧 상업용 공항이 된다며 자주 오라고 했고 얼마후 실제로 상업용 공항이 됐을뿐 아니라 델타가 취항을 했는데 그런데도 쉽사리 가게 되지는 않았다.
그후 호텔의 컨벤션으로 형이 여길 한번 왔던 것 같은데 언제였는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2009년 여름에 정부일로 뉴저지에 한달간 출장을 가게됐다. 그때는 형이 뉴버그 호텔은 형님께 맡기고 더 북쪽인 캣스킬 산맥 관광도시인 리버티에서 다른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쉬는 날 집사람과 찾아갔는데 형과 형수님이 우트스탁과 델라웨어 강 등 명소를 두루 구경시켜 주시고 호수가의 멋진 고급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고풍어린 전통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대접 해주셨다. 너무 극진한 대접을 받아 또 찾아가는게 염치가 없었지만 돌아가기 전에 꼭 다시 한번 오라고 두분이 당부 하셨고 우리도 그냥 돌아가는게 섭섭해 출장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찾아가며 이번엔 내가 대접을 하겠다고 고집을 했지만 역시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 내비게이터를 잘못 설정해 약속시간보다 몇시간 늦게 도착해서 더욱 죄송하게 됐었다.
2009년 여름: 호숫가의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 받았다.
2009년 여름: 항상 호기심이 많은 광남이 형이 우드스탁의 베델 예술 센타의 직원과 열띈 토론을 벌리고있다.
2009년 여름: 델라웨어강의 다리인데 이동네의 역사 전문가 광남이 형이 유명한 사람이 설계했다고한다. 당시의 기술로서는 획기적 설계였고 그사람이 유명한 다른 다리도 후에 설계했다고 하는데 다리 이름을 둘다 잊어버렸다.
2009년 여름: 항상 호기심이 많은 광남이 형이 다리의 단면모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있다. 한두번 가본게 아닐텐데 볼때마다 신기한가보다.
2009년 여름: 델라웨어 강의 다른 다리인데 강에 물고기가 보일꺼라고 찾고있다.
작년 감사절때 손녀애가 무슨 경기에 참여한다고 아틀란타에 오셔서 형과 형수님을 반갑게 만났다. 저녁에 호텔에 찾아갔을때 사위와 손녀를 만났는데 두분이 그들에게 다정한 장인 장모, 할아버지 할머니인 것이 느껴졌다. 따님은 아직 경기장에서 돌아오지 않아 아쉽게 못만났다. 다음날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산에 바람을 쐬러 가기도 하고 남부음식을 즐기기도 하며 하루를 같이 보냈다. 돌아가신 며칠후 캣스킬 산맥의 명물 메이플 시럽을 세병이나 보내왔다.
2015년 11월 조지아 북부의 산악도시 헬렌
2015년 11월 송어 양식장
2015년 11월 항상 호기심이 많은 광남이 형이 양식장 직원에게 왜 시냇물이 맑지 않냐고 묻고있다. 직원은 상류에 레이니어호수가 있는데 호수의 물은 바닥은 차갑고 표면은 따뜻하다. 그러나 가을에 날씨가 추워지면 차가운 공기에 노출된 표면의 물이 차가워져 아래로 내려가고 상대적으로 따뜻해진 바닥의 물이 위로 올라가는 lake turnover현상이 일어나 호수와 아래 시냇물이 뿌얘진다고 설명한다. 덕분에 나도 하나 배웠다.
어제 마침 집사람이 오래간만에 팬케익을 지지고 광남이 형이 보내온 캣스킬 메이플 시럽을 바르며 형 생각을 했는데 곧 오따와 연화씨가 비보를 전해왔다. 경황이 없으실줄 알면서도 가만 있을수 없어 뉴버그의 형수님께 전화를 했더니 가망이 없다고 하신다. 오늘 아침엔 우리를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탄을 근신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지내고 광남이 형을 생각한다. 호기심이 많은 광남이 형이 천당의 안내인에게 그곳의 이모저모를 질문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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