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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학생 영어교육대대에 입교하다

하루는 아침부터 교관들과 피교육자 장교들이 수근거린다. 무서운 사람이 입교를 한다는거다. 켈로 부대 출신으로 이북을 수없이 드나들며 매번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불사신이라고했다. 지금은 서해안의 한 섬에서 험한 애들을 모아 특수교육을 시킨다고했다. 일년 전에 학생 하사에게서 등에 칼부림을 당했다는 선배 문중위는 그사람을 자기 반에 넣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신참인 나는 철이 없고 깡만 살아서 내가 맡겠다고 자원했다. 내가 인격적으로 대하는데 설마 나에게 해를 가하랴. 드디어 그사람이 나타났다. 피교육자 장교들이 "어 저친구 상사 계급장 달고 왔네" 하며 놀란다. 서해안의 섬에서는 공수부대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훈련 시킨다고 했다. 내반에는 김상사외에도 하사관 몇과 대위와 소령 몇도 있었는데 모두들 긴..

대상포진 예방주사

어렸을 때 수두를 앓고 나았어도 균은 몸속에 숨어있다가 나이들어 나올 수가 있는데 그것이 대상포진이다. 대상포진은 한번 나오면 한달 이상 오래 가고 일단 들어가도 다시 여러번씩 나올 수도 있다. 내가 아는 분 몇분이 걸렸었는데 고통이 말할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2006년에 예방주사가 개발돼 60세 이상은 다 맞어야한다고 해서 60세 됐을 때 맞었다. 그런데 그건 효과가 그리 좋지 않아 맞은 사람의 반 정도는 다시 걸린다고 했다. 수년전 새로운 예방주사가 개발됐는데 효과가 훨씬 좋다고한다. 먼저 주사를 맞은 사람도 다시 맞으라고 했다. 한번 맞고 2달에서 6달 사이에 한번 더 맞어야한다. 그런데 공급이 달려 금년 1월에 간신히 첫 주사를 맞고 지난 금요일에 두번째 것을 맞었다.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

새 세상

여기 미국 동남부에는 산이 많다. 서부의 로키 산맥 같이 웅장하진 못해도 아팔라치안 트레일이 시작되는 이곳 남쪽의 산에는 푸른 숲이 울창하고 송어와 가재가 있는 차가운 시냇물과 아담하고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그래서 한국이나 타주에서 손님이 오면 모시고 다닐 만한 데가 여러 곳 있다. 그런데 “어머 폭포가 너무 예뻐요.” “알록달록 물든 단풍 한가운데 있으니 신선 노름이 따로 없네요” 라고 감격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저런 폭포는 한국에도 있는데…” 라고 하거나 “강원도 어느 어느 동굴에 가 보셨어요? 그게 이 동굴 보다 훨씬 더 멋있어요.” 라고 해 모처럼 시간을 내어 모시고 다니는 사람을 맥 빠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간 곳에서 자기 앞에 새로이 펼쳐진 세상에 감격할 줄 아는 사람이 있고 감격할..

여행

여행이라는 두 글자는 우리에게 안 가본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가봤던 세상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한다. 은퇴를 갓 했거나 곧 하려는 우리 또래의 부머들은 은퇴를 하고 무엇을 하려냐고 물으면 거의 모두가 일단 여행을 하겠다고 한다. 특히 자영업을 하던 이들은 휴일도 없이 일하던 바쁜 일정에서 드디어 풀려나 가보지 못한데를 가보고 싶어한다. 또 은퇴 초기 아직 기력이 있어 여행이 힘들지 않을 때 많이 다녀 봐야지 하는 촉박감도 있다. 은퇴를 했건 안 했건 간에 일상생활은 단조롭고 하루 하루가 지나며 성취감을 느끼기 힘든다. 그에 비해 여행할 때는 분명한 목적이 생긴다. 다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는 게 그날 그날의 목적이다. 그리고 결국 집에 돌아와야 하니 단조로운 일상 생활에 비해 확실한 시작과 끝이 있고 끝..

어머니

홀로코스트 생존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극심한 어려움 중에 나타난다고 했다. 나는 그런 진정한 가치를 갖은 한 분을 알았다. 그리고 그분과 70년을 같이 지내는 특권을 누렸고 그 분의 진정한 가치를 보았다. 바로 내 어머니다. 어머니는 1918년 일정 치하에서 나으시고 3년 전 99세에 작고하셨다. 어릴 적 어머니의 첫 기억은 6.25 전쟁이 시작 되고 몇일 지나서 였다. 인민군 네 명이 집 마당에 들어와 사방에서 어머니에게 총을 겨누며 아버지를 내어 놓으라고 했다. 어머니는 "너희들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총을 쏠라면 쏴라" 라고 침착하게 말했다. 세 살의 어린 나이에도 정말 쏘면 어떻 하나 겁이 났었다. 그러나 늠름한 말에 군인들은 깜짝 놀랐고 슬그머니 총을 내리고 기가 죽어 나갔다. ..

첫당직 이야기 - 외출 금지 시기에 십여명 외출 시키다

내가 다닌 대학에는 ROTC 프로그램이 없어서 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군복무를 하려면 공군이나 해군의 간부후보생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없었다.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해 공군을 선택했다. 1968년 3월 4일 부터 18주 기본 군사훈련을 받고 7월 2일에 소위로 임관했다. 교육특기를 배정 받고 서울 공군본부에서 두달 간 특기교육을 받은 후 기본 군사훈련을 받았던 대전 기술교육단으로 다시 내려가 통신학교 영어교육대대에 부임했다. 외국에 나가 훈련을 받을 장교와 하사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게 주 업무였다. 우리 대대에는 교관이 거의 모두 장교였고 하사관이나 사병이 몇명 없었으나 통신학교에는 장기 특기교육을 받는 사병과 하사관 피교육자가 700 여명이 있었다. 낮에 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그다지 힘들다고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