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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 봉원 교회 창립 65년 기념 행사를 보며

오늘은 봉원 교회 창립 65주년 기념 음악제를 보았다. 지구 저편에 있는 모교회의 행사를 거의 실시간에 참여 한다니 좋은 세상이다. 단상에 올라 온 교인들은 대부분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남과 같지 않고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해 온 동역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의 소년기와 청년기에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던 봉원 교회를 이어 받아 소중히 지켜 온 이들이고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그리스도와 같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름이 없다. 홍경만 장로님의 65년사 출판 기념사 말씀 대로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인간적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그리스도에게는 다 같은 교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47년 전에 한국을 떠난 우리 부부는 봉원 교회의 “예전 교인”이고 서울 봉원동의 교회에 ..

23.05 타지로 떠난 교인들이 흠모하는 교회

나는 내가 속했던 단체나 기관에 깊은 애정을 갖는다. 다녔던 학교와 일했던 직장이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그때의 사람들과 아직도 교류를 한다. 남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걸 근래에야 알았다. 그러니 중 1 시절 부터 18년 후 미국에 올 때 까지 영과 육의 성장을 지켜준 봉원 교회에 남다른 애정을 느끼는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평범한 교회의 인연 이상으로 애정을 갖게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어느날 목사님이 사무실에 부르셨다. “김선생, 취직도 했으니 이젠 장가를 가야할 것 아니오?” 나는 “결혼은 생각치 못했어요.”하고 대답했다. 학교를 일찍 다녀 대학을 졸업하고 4년 반의 공군 장교 복무를 마치고 직장에 취직한지 두해 됐는데 아직 20대였다. 그러나 궁금하긴 했다. “그런데 누굴 생각하고 계시는..

23.03 봉원교회의 옛이야기

이대부중에 입학 한1958년 첫 여름방학 때 신당동에서 신촌으로 이사 와서 첫 주일에 신성 교회에 나갔다. 걸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장로교회였다. 천막지붕에 흙벽돌 벽에 맨 흙바닥의 교회는 처음 간 곳 같이 낯설지 않고 아늑하고 다정했다. 젊은 이원태 전도사님은 부임 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내 평생 신앙의 지도자로 존경하는 이 목사님을 처음 대면하는 날이었다. 주일이면 산동네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이 교회에 몰려 왔다. 부모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서도 애들이 교회에 가는건 좋게 여겼다. 아마 교회에서 나쁜건 가르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였을께다. 실제로 어른들이 집앞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아이들을 보살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적도 있다. 전쟁이 끝난지 몇 년 되지 않아 모든게 ..

70 여년을 살며 배운 것

1. 나는 아틀라스가 아니고 세상의 짐을 혼자서 다 짊어질 필요가 없다. 2.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 모든 이를 완전케 해야 하는 책임이 나에겐 없다. 3. 나의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기에 감정이 있다. 4. 나의 가치를 알아 보지 못하는 사람과 상종치 않는다. 그들은 나의 가치를 모르나 나는 안다. 5. 나를 비열하게 앞지르려는 사람에 대항치 않는다. 나는 남과 경쟁 하며 살 필요가 없다. 6. 행상의 물건 값을 깎지 않는다. 잔돈이 필요한 사람은 나 보다 그들이다. 7. 팁을 바라고 일하는 이들을 관대히 대한다. 열심히 일하는 그들을 잠시라도 즐겁게 해준다. 8.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칭찬은 받는 이나 주는 이에게 다같이 좋다. 칭찬을 받으면 "아니예요" 하고 사양치 않..

우리 교회의 부자 가족

(다샤 타란 씀) 1946년의 부활 주일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14 살이었고 여동생 아시는 12 살, 언니 달린은 16 살이었다. 아빠는 어린 일곱 애들을 엄마에게 남기고 5년전에 돌아 가셨다. 그때는 더 큰 언니들은 시집을 갔고 오빠들도 집을 떠났다. 부활 주일 한달 전에 목사님이 부활 주일에 가난한 가정을 위해 희생 헌금을 하겠으니 정성껏 준비 하라고 광고 하셨다. 우리는 집에 와서 헌금할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의론했다. 우선 감자를 50 파운드 사서 그것으로 한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면 한달 식품비에서 20 달라를 절약 할 수 있었다. 되도록 불을 켜지 말고 라디오도 듣지 말고 전기료를 아끼기로 했다. 언니와 나는 집집마다 다니며 집안팍을 청소해 줬고 애들을 봐주고 돈을 모았다. 면직..

인생에서 중요한 것

(리시스 블랙스톤 씀) 내 아들이 6살 때였다. 두개골과 척추 수술을 두번째로했다. 첫번째 신경외과 수술이 잘못 되어서다. 두번째 수술 팀은 애의 허벅지 뼈를 두개골에 이식하고 두개골과 목뼈를 티다늄 막대기로 연결하는 큰 수술을 했다. 수술 후 수개월간 머리와 척추에 철 보호대를 달고 살아야한다.이 밤에 애는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이밤에 애가 깨어나기나 할런지 깨어난다면 어떤 모습일런지 알 수 없다. 이밤에 건넌방의 아이가 수술 실패로 사망했다. 이밤에 나는 애가 훌륭한 운동 선수가 되거나 학교 점수를 잘 받아 오거나 좋은 학교에 가거나 다른 영광스러운 일로 나를 자랑스런 엄마로 만들어 줄 것이란 허망스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밤과 그리고 그후의 모든 밤에 나는 오로지 애가 깨어나 주기만 바..

빨간 구슬

미시간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을 때 동네 가게에 들렸다. 간단한 간식 거리를 고르고 있는데 남루하지만 깨끗한 옷을 단정히 입은 소년 하나가 야채칸에서 옥수수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주인이 소년에게 말했다. "얘 케빈아 잘 지냈니? 엄마는 좀 어떠시니?" 소년: "네 밀러 할아버지, 전 잘지냈어요. 엄마는 많이 나으셨어요." 밀러씨: "그래 잘 됐구나. 옥수수가 탐스럽지?" 소년: "옥수수 참 싱싱하고 맛있게 생겼네요. 그런데 살 돈이 없어요." 밀러씨: "그래 돈은 없어도 뭐 다른거 옥수수 하고 바꿀 껀 없니?" 소년은 호주머니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구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바꿀 꺼라고는 이 구슬 밖에 없어요." 밀러씨: "참 예쁘구나. 그런데 빨간 색이구나. 할아버진 파란걸 더 좋아해. 집에 파란거 ..

근심 나무

시골의 백년 가까이 된 집을 같이 수리 하려고 동네 목수를 불렀다. 일을 나온 첫날 목수는 타이어 하나가 터져 한시간을 손해 보고 일하는 동안 전기 드릴이 고장 나고 그럭저럭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25년은 됨직한 낡은 트럭이 발동이 걸리질 않는다. 내가 차로 집에 데려다 주는 내내 그는 낙심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잠시 들어와 자기 식구를 만나고 가시라고 해서 같이 차에서 내렸다. 문 앞의 작은 나무에 이르자 그는 두손으로 나무 가지들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우울한 표정이 환한 웃음으로 바뀌고 애들을 껴안고 아내에게 키스를 했다. 잠시후 내가 차로 가는 동안 나를 따라와 배웅을 했다. 작은 나무에 이르러 아까 본 것..

치매 치료약 연구 대상 되다!

얼마전 이메일이 하나 왔는데 저명한 제약회사 Eli Lilly에서 치매 치료약을 개발 하는데 연구 대상이 되겠냐는 것이었다. 뇌에 p-tau라는 단백질이 있어서 뇌에 피의 순환을 순조롭게 해주는데 그 수치가 높으면 오히려 순환을 방해해 치매를 유발하는 것이라나 뭐라나. 여하튼 인류의 치매 치료에 기여한다는 고귀한 희생 정신으로 연구에 응했다. 피 검사로 연구 대상을 선정 한다고해서 30분 거리를 찾아가 피를 뽑아줬다. 두어달 후 오늘 전화가 왔는데 내 p-tau 수치가 연구 대상이 되기엔 너무 낮다는거다. 휴우. 그렇다고 치매가 오지 않는다는건 아니지만 일단은 걱정 안해도 될듯하다. 오는 치매를 막을순 없지만 늦출순 있을 꺼다. 일년이나 하다못해 몇달이라도 늦출수 있으면 그게 어딘가. 내가 할 수 없는 ..

나의 이야기 2022.12.07

사랑하는 내 아내여 당신이 다시 태어나거든

이번엔 남자로 태어나시오. 중학교를 입학 할 즈음에 이사간 동네에서 이원태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시는 봉원교회 같은 동네 교회에 다니며 학생회 간부로, 주일학교 보조로, 찬양대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시오. 고등학교 시절에 주일학교 교사로 임명되어 반에 들어가면 당신 같이 착하고 이쁜 여아가 하나 있을 것이오. 이 아이가 자라며 교회봉사의 파트너가 되어 같이 일할 때 당신은 큰 기쁨을 느낄 것이오. 이 아이가 결혼 할 나이가 되면 목사님이 당신에게 그아이와 결혼을 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시고 당신은 "저의 주일 학교 학생이었는데 결혼을 하겠다면 동네가 다 웃을꺼야요"라고 항의를 할 것이고 목사님은 "이젠 그 아이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누군가 데리고 갈 것이 아니오" 하실 것이오. 당신이 그 아이와 결혼을 ..

나의 이야기 2022.08.16